바람으로 그려낸 환영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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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그려낸 환영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미러 넘버 3’는 물의 ‘운디네’, 불의 ‘어파이어’에 이어 바람의 요소를 주요하게 다룬다. 베를린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라우라(파울라 베어)는 남자 친구와 함께 시골 여행을 떠났다가 불안한 예감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고집한다. 남자 친구가 라우라를 역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둘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라우라만이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의식을 되찾은 라우라는 사고를 목격한 중년 여성 베티(바르바라 아우어)의 집에 머물기를 청하는데 베티 역시 무언가에 홀린 듯 처음 보는 젊은 여성의 체류를 수락한다. 성한 곳 없던 베티의 집은 하나씩 제모습을 찾아가고 라우라 역시 서서히 회복을 맞이하는 일상을 보낸다. 라우라가 여행 전 느꼈던 정체 모를 불안의 징조에서 안정을 되찾아 가는 사이, 베티와 남편 리하르트는 라우라를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또 다른 불안이 기시감처럼 다가온다.

‘미러 넘버 3’는 전작에 비해 어쩐지 평이하고 사소하게 일상적이기까지 한 영화로 비친다. 페촐트 작품의 근간을 이뤄온 망명자와 유령성이라는 토대가 이 영화 안에서 짐짓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여서다. 전작에서 촬영과 편집술 혹은 인물 자체의 비존재적 감각으로 드러나곤 했던 페촐트의 유령성은 ‘미러 넘버 3’에 이르러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잠식한 존재감과 불어오는 바람으로 완전히 대체된다. 이전 작품에서 다뤄졌던 원소인 물, 불과는 달리 바람은 그 자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공기의 이동은 길게 자란 풀밭과 여인들의 머리칼을 건드리고 라우라와 베티 사이에서 교차하는 시선 사이로도 스쳐 간다. 베티의 외딴집과 이따금 수군거리며 그 앞을 지나는 수상한 사람들, 베티와 그 가족이 라우라를 한 인물의 그림자 아래에 놓고 바라보는 일마저 고딕 소설을 현대화한 듯한 감각을 일깨우며 화면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동행한다.
그렇다면 망명자도, 유령도 없는 ‘미러 넘버 3’는 페촐트의 예외작일까. ‘미러 넘버 3’에서의 유령성은 바람이라는 요소와 영화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베티의 가족을 잠식한 인물을 경유해 그 투명성을 더 상승시킨다. 베티의 가족이 자신을 누군가의 대체자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라우라는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모리스 라벨의 곡을 연주하는 라우라를 지켜보는 베티와 그 가족은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라우라를 라우라로 바라보는 것 같지 않다. 영화 말미에 베티의 가족이 드러내는 평온한 만족감의 일부는 그들이 라우라에게 투사한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기인한다. 완전한 오인과 착각이 자아낸 평화는 ‘미러 넘버 3’에서 가장 고조된 긴장을 감춘 순간일지도 모른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은 라우라라는 실재자와 존재하지 않는 비실재자의 투사를 거쳐 비로소 그 유령적 의의를 완성한다. 실재와 투사된 환영 사이에서 혼돈과 착란의 바람이 불어온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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