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미래] 트럼프를 해석하는 우리의 자세

글자 크기
[기후의 미래] 트럼프를 해석하는 우리의 자세
미국과 기업의 이익이 최우선 ‘난 이렇게 믿는다’가 판단 잣대 기후변화 객관적 증거들 축적 진실·과학 더 단단히 붙들어야
“거짓말하는 사람은, 그가 진리라고 여기는 것이 부과하는 객관적 제약에 따라야만 하며, 이것은 일정 수준의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 거짓말쟁이는 불가피하게 진릿값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거짓말이란 것을 지어내기 위해서 거짓말쟁이는 무엇이 진실인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 다른 한편, 개소리를 해서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기도하는 사람은 좀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 진리에 제약받지 않는다. 그는 필요하다면 맥락까지도 위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해리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미국 철학자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거짓말과 개소리의 차이는 명백하다. 거짓말쟁이는 어쨌든 진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허위로 둔갑시키는 수고를 들여야 하지만, 개소리쟁이는 처음부터 진실에 관심이 없다. 그는 진리의 편도, 거짓의 편도 아니며, 오직 자신의 이익에 충실할 뿐이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압송했다. 국제법, 유엔헌장, 주권국가에 대한 존중은 가볍게 뛰어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나는 국제법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법은 ‘위반과 준수’ 두 잣대 위에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의 사고 구조에서 법은 자신에게 필요하냐, 아니냐의 문제다. 마치 외투나 우산, 냅킨처럼.

기후변화도 그런 문제다. 그는 지난 7일 유엔기후변화협약을 포함한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기후변화가 사실인가 아닌가, 심각한가 아닌가는 판단기준이 아니다. 지금의 ‘위대한 미국’과 그런 미국을 있게 한 기업에 득 될 게 있는가, 없는가가 더 중요하다. 마두로 체포와 기후협약 탈퇴에서 공통으로 추출되는 메시지는 이렇다. ‘석유 산업은 영원할지니, 기후 타령은 그만하고, 맘 편히 시추하시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매년 ‘세계에너지전망’을 발행하는데, 지난해 11월 펴낸 최신판에서 2020년부터 제외한 시나리오를 복원했다. 현 상황이 계속 유지되고 새로운 정책이 추가되지 않는 미래를 그린 ‘현재 정책 시나리오’(CPS)다. 이 시나리오에서 석유 수요는 2050년까지 계속 늘어난다. ‘2030년이 정점’이라는 기존 전망보다 한참 후퇴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IEA의 최대 ‘쩐주’인 미국은 ‘기구 설립 본연의 목적인 화석연료 수급관리로 돌아가라’고 IEA를 줄기차게 압박해 왔다. 오로지 중요한 건 지금 미국의(혹은 정권의) 이익이다.

프랭크퍼트는 오늘날 개소리가 확산되는 이유를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에서 찾는다. 객관적 탐구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고, 대신 ‘나 자신만은 확정적’이라는 믿음이 우위를 점한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는 말이 모든 판단을 대체한다. 개소리의 세계에서 사회는 진실을 찾는 공동의 장이 아니라 발언을 토해내고 유통시키는 무대에 불과하다. 불행한 건, 개소리를 사회의 잡음이 아닌 신호로 작동하게끔 확산·증폭시키는 유통업자가 어디에나 늘 있다는 점이다.

2035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는 과정에서 몇몇 언론은 “미국도 관심 없는데, 우리가 왜 앞장서서 우리 산업의 길을 막고 ‘자해행위’를 하느냐”, “감축목표가 유독 우리 기업에 혹독한 규제 사슬로 작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EA의 최근 에너지 전망 결과를 놓고도 ‘잡음이 지배할 경우 세계가 어디까지 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가 아니라 ‘석유 산업에 부는 훈풍’이라는 신호로 해석하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국제사회는 198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출범 이래 지금까지 기후변화에 관한 객관적 증거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IPCC의 ‘정책 결정자를 위한 요약보고서’는 모든 회원국의 전원 합의를 거쳐 발행되며 그 토대 위에 온도 상승을 1.5~2도로 억제하자는 목표와 2050 탄소중립이 등장했다. 모든 국가가 머리를 맞대고 승인한 과학적 합의가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냅킨 한 장의 가치로 전락해선 안 된다. 개소리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단단히 진실과 과학을 붙들어야 한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