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파르 파나히는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칸, 베니스, 베를린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기록을 갖게 된 거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세계적인 감독들과 사정이 다르다. 그는 2009년 이후 투옥과 가택 연금을 오가며 영화제작 금지 및 여행의 자유까지 박탈당한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영화인으로서 그의 사회적 생명을 끊으려는 이란 당국에 맞서 목숨을 걸고 완성한 영화의 크레디트에는 배우를 비롯한 스태프들의 이름이 공란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2023년에서 2024년까지 7개월에 걸친 투옥을 마지막으로 2025년 그를 속박하던 모든 제한 조치들은 공식적으로 해제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자신의 영화가 이란 당국의 검열 아래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이번에도 정부의 허락 없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칸영화제는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함으로써 거장의 귀환에 화답했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7개월에 걸친 파나히의 투옥 경험에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에 기반한다. 각기 다른 이유로 반체제 선전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지옥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생존자 바히드는 우연히 자신의 영업소에 온 손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잊고 있던 지옥문이 열렸다는 것을 직감한다. 바닥 모를 공포와 복수심에 마비된 그는 그를 붙잡아 생매장하려 하지만 그의 완강한 부인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 자는 누구인가? 복수하려는 대상의 신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생긴 그는 이 자의 신원을 확인해 줄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선다. 피해자들을 찾아가는 이 희비극적인 로드무비는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간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지옥으로 재소환된 인물들은 극렬한 공포와 분노, 복수심과 흥분에 사로잡히지만 문제는 체포 당시 눈이 가려졌던 생존자들 어느 누구도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각을 박탈당했던 그들은 그의 목소리, 냄새, 피부의 촉감으로 그를 기억해 내는데 이것은 그들의 몸에 새겨진 기억이요 반응이다. 자루에 담긴 물건이 되어 그들 앞에 던져진 지옥의 사자 앞에서 피해자들 사이의 심리적 균열과 갈등이 표출되고 그 모습은 공포스러우면서도 딱하다. 영화는 웃픈 희비극성으로 가득하다. 칠흑 같은 밤에 시작된 사건은 대낮의 황량한 벌판의 시간을 지나 다시 밤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밤-낮-밤의 시간 여행에서 영화가 시작될 무렵의 심문자와 피심문자의 위치는 엔딩부에 이를 무렵 정반대로 자리바꿈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가 칸트적 정언명령에 근거한 선악의 문제를 넘어선 지점까지 윤리의 문제를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히드의 얼어붙은 뒷모습이 프리즈 프레임에 갇히는 엔딩 장면에서 나 역시 멍한 상태로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영화가 제기하는 공포와 윤리의 깊이에 속절없이 침윤되었기 때문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