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VC는 대출 회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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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VC는 대출 회사가 아니다

"벤처투자회사가 투자기업에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바로 채권추심 업체에 일을 맡겨, 창업자가 매일같이 독촉 전화에 시달리는 일까지 있다. "


지난달 22일 한국창업학회와 아시아경제가 공동으로 주최한 '생산적 금융 사각지대와 발전 방향'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가 한 말이다. 벤처투자와 관련한 창업자 연대보증 요구 금지 제도가 본격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주식매수청구권과 각종 연대책임 약정이 '금지된 연대보증'의 역할을 대신하는 현실을 전한 것이다.


그는 국내 벤처투자 현실을 "투자처럼 포장된 여신(대출)"이라고 표현했다. 표면상으론 창업자의 성장을 지원하고 성과를 공유한다는 '지분 투자'지만, 계약서 안에는 여전히 창업자에게 투자 원금과 이자를 사실상 보장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창업·벤처 금융의 출발점이 애초에 투자보다 '대출'에 가까웠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았다. 국가가 오랜 기간 대출 형태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면서, '빌려준 돈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인식과 연대보증 관행이 모태펀드·정책자금이 결합된 벤처펀드 구조에도 이식됐다는 설명이다. VC(벤처캐피털)들이 LP(펀드출자자)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내세우며 이 같은 문화를 정당화해 온 측면도 있다.


토론회 사흘 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연대책임 금지 규정을 고시에서 법률로 끌어올리는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번 개정안은 벤처투자회사뿐 아니라 개인투자조합·창업기획자 등도 연대책임을 요구하는 투자계약을 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여야가 큰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인 만큼, 연내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문제는 법의 문구만이 아니라, 국내 '모험자본' 문화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LP·VC·창업자·정부가 이익은 나누면서 손실은 전부 떠넘기려 하는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후속투자, 실패의 정리와 재기까지 전 과정을 동행할 방법에 대해 시작 단계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대책임 조항이 빠진 빈자리를 또 다른 편법 보증이나 '숨은 독소조항'이 채우게 해서도 안된다.


스타트업 창업은 본래 '실패할 가능성'이 90%가 넘지만, 그럼에도 기술 및 사업 모델 혁신을 통해 새로운 국가 동력을 창출하는 분야다. 작은 가능성을 뚫고 수조원대 기업가치를 일궈낸 비상장사를 우리가 '유니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실패와 재도전을 장려해 놓고서 정작 실패의 모든 부담을 창업자 개인에게 돌린다면, 넥스트 유니콘은 발견되기 어렵다. 법이 개정돼도 "계약과 관행은 그대로"라며 냉소로 끝날지, 아니면 모험자본과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지는 결국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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