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은 더 이상 환경정책의 영역을 넘어 산업 전략의 핵심 좌표가 되었다. 이달 한국 정부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과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확정했다. 우리 앞의 핵심 과제는 이제 "누가 먼저 새로운 에너지 지형을 읽고 산업 구조를 재설계하는가"로 넘어갔다. 탄소를 줄이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었고,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이 서 있다.
왜 조선업인가. 탄소중립 체제로의 이행은 육상보다 해상에서 더 빠르게, 더 깊게 진행된다. 재생에너지의 공간적 한계와 저장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세계는 다시 바다로 향하고 있다. 에너지의 생산도, 운반도, 저장도 해상에서 이뤄지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탄소중립 시대의 '인프라 제작자'로 격상된다.
해상풍력, 부유식 플랫폼, 수소·암모니아 운반선 등은 이미 조선업의 미래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더해 주목해야 할 분야가 탄소 포집·운송·저장·활용(CCUS) 기술이다. 특히 '운송' 단계에서 사용되는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은 한국이 강점을 가진 고부가 선종이며, 향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전략적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탄소중립에 회의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운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도 이와 같은 운반선 기술을 결합하면 좋겠다. 해상 탄소처리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도 추진해야 할 사업이기 때문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미국이 중국의 '해양 실크로드' 전략에 맞서 해양 패권을 되찾으려는 장기적 지정학 전략의 핵심축이며 한국은 이 전략에서 미국의 핵심 동반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시대에 우리가 실천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에너지 시스템의 해상 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정렬해야 한다.
한국은 좁은 국토와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로 인해 재생에너지 확대가 육상 중심으로는 어렵다. 결국 해상풍력, 특히 부유식 해상풍력이 국가 에너지 전략의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의 기술 기반과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둘째, 조선업을 '에너지 전환 산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탄소중립 시대의 선박은 단순 운송 수단이 아니다. 수소·암모니아 연료 추진선,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해상 변전설비, 오프쇼어 플랫폼 등은 모두 미래 에너지 체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LNG선이 최근 한국 조선업의 황금기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탄소운반선과 신에너지 선박이 그 자리를 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해양플랜트 산업을 다시 국가 전략 산업화해야 한다. 한때 침체했던 해양플랜트는 탄소중립의 커다란 물결 속에서 재부상하고 있다. 해저 케이블, 부유식 플랫폼, 해상 수소 생산기지처럼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과 해양플랜트의 결합은 한국이 디지털·에너지 전환 시대에 독자적 산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프리미엄 제조 생태계'를 형성한다.
결국 탄소중립은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을 다시 해양 강국의 전략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다. 탄소중립의 미래는 바다에서 만들어지고, 바다에서 운반되며, 바다에서 저장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다 위의 모든 인프라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 국가만이 새로운 에너지 체제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 한국에게 주어진 기회는 분명하다. 그것은 단순히 '탄소를 줄이는 일'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산업 도약의 모멘텀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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