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는 낭만주의 시인 블레이크를 영감의 원천이라고 종종 밝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나 로봇공학에 영감을 준 작가는 누가 있을까? 나는 메리 셸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작가 이름이 낯설어도 그녀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실험실에서 인간을 닮은 피조물을 창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프랑켄슈타인(괴물을 만든 주인공 이름이며 소설 속 괴물은 이름이 따로 없다)의 모습은 생명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등의 분야에 몸담은 수많은 연구자의 모습과 몹시 닮았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버린 이 소설의 시작은 그야말로 미미하였다.
1816년 여름. 훗날 키츠, 바이런과 함께 낭만주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젊은 시인 퍼시 셸리는 유부남의 신분으로 19살의 어린 내연녀 메리와 함께 스위스를 여행 중이었다. 둘의 밀월여행은 도덕적으로는 더없이 부적절했으나 문학사를 넘어 대중문화의 역사에는 축복이었다. 우연한 만남 덕분인데 이 후일담은 메리 본인의 입을 통해 상세히 전해진다.
그들은 시인 바이런을 만나 제네바 호수 근처 별장에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쳐 집안에만 있어야 했던 그들은 요즘으로 치면 무서운 이야기 배틀을 벌인다. 메리는 이때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를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로 집필해 1818년에 출간하는데, 이 작품이 '프랑켄슈타인'이다. 초판은 익명으로 선을 보였는데 이때만 해도 여자의 사회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시대라 독자들은 작가가 여자인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소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10년 뒤 개정판으로 출간될 때 비로소 메리 셸리라는 이름이 제대로 들어갔고 오늘날 이 작품은 최초의 SF(Science Fiction) 장르로 메리는 'SF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SF라는 장르에 가두기엔 너무 큰 작품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철학적 관계를 보여주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에 따르는 책임을 깨닫게 해주고, 전에 없었던 시각으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책 서문에는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인용한 구절이 적혀 있다.
"저를 만든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프랑켄슈타인에게 영향을 받은 무수한 창작물 중 영화 '블레이드 러너' 최고의 명장면, 그러니까 마지막 복제인간이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결국 수명이 다해 빗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위의 서문을 고스란히 화면으로 옮긴 것이나 마찬가지.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 시리즈도 프랑켄슈타인의 직계 자손이라고 할 만하다.
소설 속 괴물은 미완 혹은 실패작이었으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속도로 볼 때 인간과 비슷한 육체를 갖고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이며 인간처럼 사고하는 피조물의 탄생이 멀지 않아 보인다. 메리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그날이 오면,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세계를 가장 먼저 예견한 위대한 소설로 평가받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여러 차례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기괴한 비주얼에 일가견이 있는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 신작도 최근에 공개되었다. SF 장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이재익 SBS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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