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에서 연설 중인 왕이 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한·중 정상회담 바로 다음 날인 7일, 중국 외교 수장인 왕이 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다. 새해 첫 해외 순방지로 아프리카를 택한 것이다. 중국은 36년째 외교 수장의 첫 해외 행선지로 아프리카를 고집해 왔다. 곧이어 중국이 서아프리카 최대 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어떤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중국이 서아프리카 최대 무기 수출국이 됐다는 사실은 단순한 방산 시장 점유율 확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개발 원조와 인프라 투자로 이미 상당한 존재감을 구축했지만, 이제는 무기 수출과 군사 협력을 결합해 정치·안보 영역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개발 중심 외교’에서 ‘군사적 레버리지를 포함한 종합 전략’으로의 전환이다.
중국의 접근 방식은 체계적이다. 도로·항만·발전소 등 인프라 건설로 신뢰를 쌓은 뒤, 가격이 낮고 조건이 느슨한 무기 공급과 군사 훈련을 제시한다. 인권이나 정치 체제 문제를 거의 제기하지 않는 점도 현지 정부들에는 매력적이다. 그 결과 서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군과 치안 기관에는 중국산 장갑차와 소형 무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군 운용과 유지·보수 체계 역시 중국 표준에 맞춰 재편되고 있다.
무기 수출은 단순한 상품 거래가 아니다. 특정 국가의 무기를 도입한다는 것은 군의 구조와 교리, 장기적 의존 관계를 함께 선택하는 일이다. 독일의 군사 전략가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했듯, 무기는 정치와 외교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은 이 점을 정확히 활용한다. 중국산 무기를 사용하는 국가는 자연스럽게 중국과의 군사 협력과 정보 교류를 확대하게 되고, 외교적 선택에서도 중국의 이해를 고려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경제 파트너를 넘어 안보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장면은 다른 강대국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프랑스는 말리·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에서 군사적 존재감을 유지했지만, 정치적 신뢰를 잃자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반면 러시아는 민간군사기업(PMC)을 매개로 안보 공백을 파고들며 존재감을 키웠다. 인프라와 개발, 군사 협력이 결합되지 않을 경우 영향력은 쉽게 흔들린다는 교훈이다.
이 변화는 한국 외교와 방산 전략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그동안 개발 협력과 인프라 수주, 문화 교류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및 신흥국 외교를 전개해 왔다.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지만, 안보와 방산을 외교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반면 중국은 경제·외교·군사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영향력을 구조화하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 납기 준수, 기술 신뢰성에서 K-방산의 강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를 전략적 외교 자산으로 얼마나 체계적으로 활용하느냐다. 무기 수출을 단순한 산업 성과로만 바라본다면 중국과 같은 전략적 확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방산 협력은 교육, 훈련, 유지·보수, 정보 교류로 이어질 수 있는 장기 외교 자산이다.
중국의 아프리카 전략은 한국에 경고이자 교훈을 준다. 국제 질서가 다시 힘의 논리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경제 협력만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안보 불안이 구조화된 지역일수록 군사 협력과 방산 외교는 국가 간 관계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동한다.
외교는 이제 말과 돈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헨리 키신저가 “힘의 균형을 외면한 외교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듯, 외교의 언어 뒤에는 현실의 힘이 작동한다. 한국 역시 개발과 인프라 중심 외교에 머물 것인지, 방산과 안보 협력을 외교 전략의 한 축으로 끌어올릴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이 서아프리카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찰이 아니라 전략의 재정렬이다.
장성원 국제경제팀 팀장 sotg81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