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정치와 분리돼야 하지만, 사회와 분리될 수는 없다. 문제는 발언 그 자체가 아니라 동원이며, 참여가 아니라 편 가르기다. 이 오래된 원칙을 다시 환기시키는 발언이 나왔다. 김정석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가 할 일과 교회가 할 일은 따로 있다”며 정교분리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일부 교회의 거리 정치화에 대해서는 “개인의 목소리가 교회 공동체를 해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교분리는 종교를 침묵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가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종교가 본래의 도덕적 권위를 지키게 하는 최소한의 규범이다. 종교는 사회를 향해 말할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를 꾸짖으며 공동체의 양심을 환기하는 역할은 정당하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가 특정 정치 세력의 확성기로 변하는 순간, 종교의 공공성은 훼손되고 신앙의 언어는 정치의 언어로 오염된다.
최근 한국 사회는 극단적 정치 대립 속에서 종교의 이름이 동원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목도해 왔다. 거리 집회와 정치 구호가 예배의 언어를 대체할 때,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동원이 되고 공동체는 치유가 아니라 분열의 도구가 된다. 김 대표회장의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개인적 견해를 넘어, 종교가 지켜야 할 공적 기준을 다시 세우는 문제 제기다.
교회가 “본질의 사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강조 역시 가볍지 않다. 복음 전파,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 섬김과 나눔은 어떤 정치적 표어로도 대체될 수 없는 종교의 핵심 기능이다. 역사적으로도 종교의 신뢰는 권력과의 거리에서 형성돼 왔다. 정치에 가까워질수록 도덕적 권위는 희미해졌고, 정치로부터 독립할수록 사회적 신뢰는 두터워졌다.
차별금지법이나 사립학교법처럼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한 종교계의 의견 표명 역시 제도권의 언어와 공론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거리의 정치가 아니라 숙의의 정치다. 이것이 종교의 발언권을 지키는 길이며, 사회적 설득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정교분리는 침묵의 명령이 아니다. 책임의 요구다. 종교가 정치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도 사회를 향해 말할 수 있을 때, 신앙은 신앙으로 남고 정치는 정치로 남는다. 경계가 분명할수록 공동체는 안정되고 사회는 덜 흔들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분명한 경계다
김정석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이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총연합 회의실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규진 사장 minjaeho58@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