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평가 결과는 단순한 선발 발표가 아니다. LG AI연구원과 SK텔레콤, 그리고 업스테이지가 통과했고,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는 탈락했다. 살아남은 세 팀 가운데 스타트업은 업스테이지만 남았다.
이 결과를 ‘이변’으로만 해석하면 본질을 놓친다. 이번 평가는 성능 경쟁이 아니라 독자성을 묻는 시험이었다. 다시 말해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독자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를 가려낸 과정이었다.
AI 시대에 이 질문은 갈수록 중요해진다. 정보와 분석, 예측은 이미 평준화됐다. 벤치마크는 공개돼 있고 알고리즘은 공유된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가정신의 기준은 달라진다. 더 빠른 판단이 아니라, 판단 이후를 감당할 구조를 갖고 있는가다. 계산으로 답이 나오는 영역은 줄어들고, 책임이 남는다.
업스테이지의 선택은 처음부터 이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 이 회사는 외산 모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략 대신, 모델 설계부터 학습 과정 전반을 자체적으로 통제하는 길을 택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실패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책임의 주체는 분명해진다.
이 선택의 중심에 김성훈 대표가 있다. 그의 이력은 화려한 스펙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선택의 연속으로 읽힌다. 지방 실업고와 지방대 출신으로 개발 현장에서 출발해 학계와 산업계를 거쳤고, 다시 창업으로 돌아왔다. 중요한 것은 출신이 아니라, 그가 반복해 온 판단의 방향이다. 그는 언제나 안전한 자리보다 책임이 남는 자리를 택해 왔다.
이번 평가에서 주목할 대목은 업스테이지 단독의 성과가 아니라, 협력 구조다. 업스테이지 컨소시엄에는 다국어 언어 데이터 기업인 플리토를 비롯한 여러 기술 기업이 참여했다. 플리토는 번역·언어 데이터 구축 경험을 바탕으로 대규모 언어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자산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는 모델 경쟁이 성능 이전에 데이터 품질과 관리 능력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협력은 단순한 지원 관계가 아니다. 모델을 설계·학습하는 기업, 데이터를 구축·관리해온 기업이 각자의 책임 영역을 나눠 맡은 구조다. AI 시대 기업가정신이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이 분리된 조직 설계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이 기준은 낯설지 않다. OpenAI 역시 모델 개발을 중심에 두되, 데이터·컴퓨팅·응용 영역에서는 다양한 파트너와 역할 분담 구조를 형성해 왔다. 반대로 많은 글로벌 기업이 AI를 활용하고도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핵심 책임을 내부에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보잉의 사례는 정반대의 교훈을 준다. 자동화와 소프트웨어 판단에 대한 의존이 커진 이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조직 안에서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기술적 설명은 있었지만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기술은 분석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책임의 주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업스테이지와 플리토의 협력 구조는 이와 반대 방향에 서 있다. 모델과 데이터의 역할은 나뉘어 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컨소시엄 전체가 공유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독자 AI와 AI 주권이 무엇인지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피터 드러커는 의사결정을 이렇게 정의했다.
“결정이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를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가의 문제다. ”
AI는 계산을 대신할 수 있고 판단을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신 답해주지는 않는다. 방향을 정하고, 그 선택의 결과 앞에 서는 일은 여전히 사람과 조직의 몫이다.
2차 평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업스테이지가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AI 시대의 기업가정신은 과감함이 아니다.
판단 이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태도다.
김성훈과 업스테이지, 그리고 플리토의 협력 사례는 성공담이 아니다.
AI 시대에 누가, 어떤 구조로,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하나의 기준 사례다.
[그래픽=노트북LM] 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