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업무 보고에서 하는 말들은 국민 정서를 꿰뚫는다. 국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덕목이고 능력이다. 그러나 너무 각론 위주다. ‘대통령(大統領)’의 본뜻이 ‘크게 거느리다’임에도 말이다.
이 대통령은 쿠팡 개인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기업이)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 ‘잘못하면 회사 망한다’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데 (기업) 태도를 보면 ‘뭐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할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쿠팡뿐이 아니다. 규정을 위반해 피해를 입히고도 별일 아닌 듯 넘어가는 기업들이 많다.
이 대통령은 개인 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물리는 과징금을 매출액의 최대 3%인 현행 수준에서 더 인상하는 방안도 지시했다. 시행령에 정해진 매출 기준은 ‘직전 3개년 평균’이다. 이 대통령은 “시행령을 고쳐 직전 3년 중 매출이 가장 많았던 해를 기준으로 삼자”고 했다. 쿠팡의 최근 3년 평균 매출액은 31조8000억원이지만 연간 최대 매출액은 2024년의 41조2901억원이다. 이 대통령 말대로 시행령을 개정하면 과징금이 최대 9500억원에서 1조2400억원으로 3000억원 가까이 늘어난다.
과징금은 법규 위반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경제적으로 강제하는 수단이다. 과징금이 너무 작으면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기업들의 잘못된 행태를 질타하고, 과징금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 말은 국민들의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국민 마음 읽는 능력 탁월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의 단속 저항 행태를 언급하며 “그거 아주 못됐잖나. 불법을 감행하며 단속을 피하려고 쇠창살을 만들고 위협적으로 행동한다는 거잖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좀 세게 (단속을) 해야 재발이 안 되지, 선별적으로 하면 ‘재수 없으면 잡힌다’며 계속할 것 아니냐”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 해역에 들어와서 불법 조업하면 꼭 잡혀서 돈도 엄청나게 뺏기고 (만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해역에서는 몇 척 격침했더니 다음부터 안 오더라고 하더라”며 “그렇게는 못 하겠지만, 어쨌든 엄정하게 대응하는 것을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어선이 우리 서해 해역에서 떼지어 불법 조업을 하고, 단속하는 해경에 쇠창살을 던지며 저항하는 모습이 종종 TV 화면에 나온다. 이를 보는 우리 국민들은 분노를 느낀다. 그럼에도 해경이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국민 불만이 크다. 인도네시아의 격침 사례 언급을 보며 ‘우리는 왜 저렇게 하지 못하냐’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엄정 대응 지시는 이런 국민 정서를 정확히 짚었다.
이 대통령은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적당히 일 처리한다든지, 조직의 최고 책임자들이 그 자리에서 얻는 권위, 명예, 이익 등 혜택만 누리고 책임이나 역할을 제대로 안 하는 건 눈 뜨고 못 봐주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위가 올라갈수록 현장에서 멀어지는 폐해를 지적하면서 “꼰대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 멀어져 권위와 권력만 남은 상태가 되면, 부하들이 눈앞에서 복종하지만 뒤에서 흉본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일부 공직자들의 행태 역시 적지 않은 국민들이 평소 느끼는 불만이고, 일부 공직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이다. 이 대통령은 그런 불만과 인상을 꼭 짚었다.
이 대통령의 국민 정서를 꿰뚫는 발언은 그의 예민한 정치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의 핵심 중 하나는 국민 마음을 정확히 읽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 마음을 읽지 못하면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없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 마음을 잘 읽는 지도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 발언은 각론에 치우쳐 있다. 그러다 보니 분야별 국정의 큰 원칙과 방향이 무엇인지가 국민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해당 기관 업무의 본령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큰 방향 제시는 아쉬워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한 말이 한 사례이다. 이 대통령은 “1만 달러 이상은 해외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돼 있는데, 수만 달러를 100달러짜리로 책갈피처럼 (책에) 끼워서 나가면 안 걸린다는데 실제 그러냐”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사장이 명확한 답을 하지 않자 재차 물었다. 이에 이 사장은 “실무는 정확히 모른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사장은 그 뒤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인천공항을 30년 다닌 공사 직원들도 보안 검색 분야 종사자가 아니면 책갈피 달러 검색 여부는 모르는 내용이었다”며 ‘외화 밀반출 단속은 세관 업무”라고 이 대통령 지적을 사실상 반박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며칠 후 국정 업무 보고 자리에서 ‘현장을 모른 채 권력과 권위만 내세우는 꼰대가 되면 안 된다’고 질타하는 말을 한 것이다. 이 사장을 겨냥한 말로 보인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의 핵심은 공항 관리와 운영을 효율적으로 해서 항공 운송을 원활하게 하고 항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공사가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본래 업무를 다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등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이런 것들보다 외화 밀반출 적발 문제를 꺼냈다. 설사 그게 공사의 주요 업무라고 하더라도 공사 사장이 그런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문제까지 알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열린 외신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 기자가 "약 10명의 한국 국민이 북한에 잡혀 있는 상황"이라며 "이 대통령은 이들의 석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아주 오래 전에 벌어진 일이라서 개별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며 "상황을 좀 더 알아보고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항공사 사장이 ‘100달러짜리 책 갈피 끼워넣기’ 적발이 가능한지를 모르는 것보다 대통령이 한국인의 북한 억류 상황을 모르는 게 훨씬 더 중대한 문제 아닌가.
이 대통령은 동북아역사재단 업무 보고에서 박지향 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 관련해서, 무슨 환빠 논쟁 있죠?”라며 ‘환단고기(桓檀古記)’ 에 대해 물었다. 환단고기는 5000년 전 단군의 고조선 이전에도 이미 5000년의 우리 역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 주장대로라면 우리 역사는 ‘반만년 역사’가 아니라 ‘일만년 역사’가 된다. 이 책은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위서(僞書) 즉 가짜 책으로 취급한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출신인 박 이사장이 ‘환빠 논쟁’에 대해 “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런 데는 동북아역사재단은 특별한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라며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합니까”라고 물었다.
'총론 리더십'도 보여줬으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 중 하나가 한국 고대사 연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재단 업무의 핵심은 중국의 동북 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중, 한일 간 역사와 영토 문제에 대한 우리 측 주장의 논거를 연구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 역사와 영토를 훼손하고 침해하려는 행위에 맞서 우리 역사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게 동북아역사재단 업무의 본령이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된 질문이나 문제 제기는 보이지 않고 환단고기 연구 같은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문제만이 화제가 됐다. 그것도 역사학계에서 근거 없는 가짜 책이라고 평가하는 책을 놓고 그랬다.
이 대통령은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생리대 가격 같은 문제들도 언급했다. 이런 문제들에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언급을 ‘생활 정치’ ‘민생 정치’라고 말한다. 국민 일상 생활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런 문제보다 건강보험 재정의 조기 고갈 대책 같은 문제가 더 중요하고 국정 운영의 본령에 해당한다.
건강보험은 국민들이 매월 내는 보험료만으로는 이미 자체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2024년 보험료 수입은 83조9520억원으로, 건보에서 병원과 약국에 주는 급여 지출(92조9640억원)보다 9조원가량 적었다.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더 적어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만으로는 유지가 안 된다는 뜻이다. 2024년 기준으로 건보 적립금이 29조7000억원이 쌓여 있지만, 현재와 같은 지출 증가세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건강보험료를 더 올리거나, 건강보험 지급 항목을 중대한 질병 위주로 조정하거나 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치 리더십은 중장기적 안목에서 국정 운영의 큰 방향과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을 설득해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론의 반대와 저항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반대 여론을 설득해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게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고 발휘해야 할 능력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원자력 발전, 의료 개혁 등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한 문제들이 많다. 당장 국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각론 리더십에 더해 중장기적인 국정 운영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국민을 이끌어 나가는 총론 리더십까지 보여준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아주경제=김낭기 논설고문 ngkim@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