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떠오른다. 영화 제목을 패러디해보자면 “이틀 전엔 그림자였고, 오늘은 터치아웃이다”라고 해야할까. V리그 여자부에서 이틀 사이에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는데, 이틀 전엔 손가락이 흔들린 게 아니라 그림자였기에 그대로 ‘노터치’였고, 오늘은 그림자가 아니라 ‘터치아웃’이라는 판독 결과가 나왔다. 비디오 판독을 진행하는 경기위원, 심판위원, 부심이 누구냐에 따라 판독 결과가 달라지는 모양새라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11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현대건설과 IBK기업은행의 경기부터 살펴보자. 현대건설이 세트 스코어 2-0으로 리드하던 3세트, IBK기업은행이 22-20으로 접전의 리드 상황. 빅토리아의 오픈 공격이 코트 밖으로 벗어났다. 심재일 주심의 첫 판정은 그대로 아웃. 현대건설의 득점이 인정됐다. 그러자 IBK기업은행의 여오현 감독대행이 블로킹 터치 여부를 판독 신청했다.
느린 화면을 여러 차례 돌려봐도 공은 카리의 왼손 중지 위로 지나갔고, 그 과정에서 손가락의 흔들림은 없었다. 카리의 손가락들은 블로킹 진행방향대로 움직일뿐이었다. 그러나 감독관은 “블로커 터치아웃” 판독을 했다. 이 판정에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격렬한 항의를 쏟아내자 판독에 참여한 남영수 부심은 “손가락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강성형 감독은 “참 답답하네, 답답해. 뭐가 흔들렸다 그래. 우리도 보고 있는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대건설 입장에선 21-22, 1점차 추격 상황이 될게 20-23, 석점 차 열세가 됐으니 더욱 아쉬울 법 했다.
기자도 이 기사를 쓰느라 여러 차례 다시보기로 화면을 돌려봐도 공에 의한 손가락 흔들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명의 경기위원, 정유연 심판위원, 남영수 부심 눈에는 뭐가 대체 보였다는 걸까. 어쨌든 IBK기업은행은 이 판독을 통해 23-20으로 달아났고, 그대로 3세트를 따냈다. 극적으로 3세트를 따낸 IBK기업은행의 경기력은 급격히 살아나 4,5세트를 연달아 따내며 올 시즌 첫 리버스스윕 승리를 따내며 4연승을 이어나갔다. 현대건설은 3연패에 빠졌다. 의문투성이의 판독 하나가 경기 승패를 뒤바꿔버렸고, 순위 싸움의 판세를 바꿔놓은 셈이다.
경기 뒤에도 강성형 감독은 심판 판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강 감독은 “(심판들이 우리 팀에) 감정을 갖고 있나"”며 “20점 이후 승부처에서만 벌써 몇 번째인가”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그런 판정이 나오면) 분위기를 안 탈 수가 없다. 심판들이 흐름을 끊는데, 불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해서 세트가 넘어가고 승점 뺏긴 게 몇 번이나 된다"며 "이번만큼은 강하게 (어필)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현대건설은 올 시즌에 오버넷을 놓고도 여러 차례 불리한 판독 결과를 받아 세트를 내준 적이 꽤 있다.
이 경기가 열리기 이틀 전인 9일 광주 페퍼저축은행-흥국생명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흥국생명이 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선 3세트 31-30 매치포인트 상황. 페퍼저축은행 이한비의 오픈 공격이 그대로 코트 밖으로 크게 벗어났다. 페퍼저축은행의 장소연 감독은 즉시 ‘블로커 터치아웃’으로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판독 결과, 이한비의 손을 떠난 공은 흥국생명 미들 블로커 이다현의 오른손 중지 위 근처로 날아갔지만, 손가락의 흔들림은 볼 수 없었다. 공의 그림자 때문에 흔들려보이긴 했지만, 눈에 띄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없었고, 방신봉 경기위원이 “노터치”를 선언하면서 경기는 그대로 흥국생명의 세트 스코어 3-0 셧아웃으로 끝났다. 장소연 감독이 “터치 아웃 아니냐. 재확인을 해달라”라고 요청했지만, 판독에 함께 참가한 이명현 부심은 “터치 아웃이 되려면 손가락 흔들림이 있어야 하는데, 손가락 흔들림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이 11일 화성 경기에서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장소연 감독이 거듭 재확인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6일 GS칼텍스-페퍼저축은행전에서는 GS칼텍스 이영택 감독이 ‘시차가 있는 더블컨택’가 아니라는 판독 결과에 불복하며 재확인 요청을 했고, 받아들여진 적도 있다. 경기위원, 심판위원이 누구냐에 따라 재확인이 받아들여지기도,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이 또한 일관성이 없는 처사다. 참고로 당시 판독은 더블컨택이 아니라고 판독 결과가 나왔지만, KOVO는 다음날인 7일, 판독 결과가 오독임을 GS칼텍스측에 인정하기도 했다. 그 판독 하나로 승부의 양상은 달라졌다. 비슷한 장면이 나왔는데, 이틀 사이로 판독의 결과가 180도 달랐다. 누가 옳았을까. 아니, 판독하는 사람에 따라 판독 결과가 오락가락 달라지는 게 맞는걸까. 이러니 현장에서는 심판진에 대한 불신이 쌓일 수밖에.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