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균류학자 니컬러스 P. 머니의 ‘인류와 함께한 진균의 역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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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균류학자 니컬러스 P. 머니의 ‘인류와 함께한 진균의 역사’ 출간
인류와 함께한 진균의 역사/니컬러스 P. 머니 /김은영 옮김/세종/2만2000원

우리는 곰팡이를 두려워한다. 음식에 피면 버리고, 몸에 생기면 치료하고, 집 안에 번지면 제거 대상 1순위가 된다. 이런 반응은 본능에 가깝다. 실제로 진균은 인간을 병들게 하고, 중독시키며, 때로는 생명을 앗아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진균이 인류를 살려온 가장 강력한 약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문명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들인 먹고, 마시고, 치료하고, 믿고, 죽는 순간에는 언제나 곰팡이, 효모, 버섯, 즉 진균이 함께해왔다. 진균은 인간보다 오래전부터 지구에 있었고, 인간은 그 거대한 생명체와 공존하거나 충돌하며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니컬러스 P. 머니 /김은영 옮김/세종/2만2000원 균류학자이자 생명과학자인 저자 니컬러스 P. 머니는 유년기에 곰팡이로 인한 중증 천식으로 생사를 오갔으며, 이후 학계에서 진균과 인류의 상호작용을 연구해왔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고고학 사례가 등장한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의 소금광산에서 발견된 2600년 전 광부의 대변을 분석했더니, 눈에 보이는 음식 찌꺼기는 없었지만, 뜻밖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치즈를 만드는 곰팡이 페니실리움 로크포르티와 맥주를 만드는 효모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의 DNA였다. 광부가 먹은 빵과 치즈, 마신 맥주는 사라졌지만, 그 음식을 가능하게 한 진균의 흔적은 수천 년을 버텼다. 문명의 기록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었다.

현대 의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항생제 페니실린은 곰팡이가 박테리아와 경쟁하기 위해 만든 자연산 화학 무기였다. 인간은 이를 발견하고 응용했을 뿐이다. 책에는 진균이 약이 되기 훨씬 전부터 인간 곁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나온다. 신석기시대의 아이스맨 ‘외치’는 자작나무구멍장이버섯을 지니고 있었다. 장식품인지 약인지 확실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기생충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어 가장 오래된 약용버섯 사용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의학은 실험실이 아니라 숲에서 시작되었고, 그 안내자는 늘 진균이었다.

진균의 영향은 식탁과 병원을 넘어 의식과 신앙의 영역까지 확장된다. 환각버섯에 들어 있는 실로시빈은 우울증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각버섯은 고대 의식과 종교 체험의 배경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로시빈을 만드는 진균이 사람뿐 아니라 매미를 감염시켜 행동을 조종한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이 곰팡이는 감염된 수컷 매미가 암컷처럼 날갯짓하게 하여 다른 수컷을 유인하고, 그 순간 포자를 퍼뜨린다. 이처럼 진균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경계를 흔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진균은 언제나 유익하기만 한 동반자는 아니었다. 책에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죽음이 등장한다. 식용으로 유명한 달걀버섯을 독버섯으로 바꿔치기해 살해했다는 설이다. 곰팡이는 치유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완벽한 살인 무기가 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는 무좀이다. 아르메니아 동굴에서 발견된 5500년 된 신발은 인류 최초의 신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신발의 구조가 통풍을 막아 무좀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문명의 편의가 새로운 질병을 낳은 순간이었다.

저자는 “인류의 진균사는 선택의 역사였다. 제거할 것인가, 길들일 것인가. 두려워할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 빵과 술, 약과 독, 치료와 감염은 모두 이 선택의 결과다. 인간을 살리는 것도, 위협하는 것도 진균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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