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북극항로 개척’ 꿈, 국익인가 허상인가 …러시아의 복잡미묘한 ‘亞 회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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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북극항로 개척’ 꿈, 국익인가 허상인가 …러시아의 복잡미묘한 ‘亞 회귀 정책’
서구 통해 강대국 정체성 형성 불구 유럽·극동 양극 사이 진자운동 지속 표트르 대제·알렉산드르1세 시대 등 동아시아 진출 역사 실패 사례 통해 푸틴 ‘아시아 전환 구상’ 전망 내다봐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표트르 대제에서 푸틴까지 러시아 동진의 역사/ 크리스 밀러/ 김남섭 옮김/ 너머북스/ 3만4000원

“안녕하세요, 친구들, 신사 숙녀 여러분, 블라디보스토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2015년 9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러시아의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 주최의 ‘극동경제포럼(EEF)’에서 이 같은 인사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이날 아시아의 경제성장 덕분에 러시아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아시아를 우선시하고 있다며 극동 지역에서 고속 개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EEF로 대표되는 푸틴의 ‘아시아로의 전환’ 구상은 유럽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낙후된 극동 시베리아 지역을 개발하며, 아시아 및 태평양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2012년 공식화된 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 제재에 대응해 더욱 가속화해왔다.

푸틴은 이후 매년 EEF를 열면서 지속적으로 극동 개발과 북극항로 개척 등을 강조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로 묘사하며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북한과는 2024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1세기 차르의 아시아로의 전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반도체 개발과 이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을 박진감 넘치게 다룬 ‘칩워’를 저술하기도 한 저자는 신간에서 표트르 대제 시대부터 현재의 푸틴 시대까지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과 그 실패의 연대기를 흥미진진하게 정리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시한다.
크리스 밀러/ 김남섭 옮김/ 너머북스/ 3만4000원 책에 따르면, 표트르 대제를 비롯해 근현대 러시아 지도자들은 대외정책을 유럽적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서구를 통해 자신들을 강대국으로 인식하는 정체성을 형성해왔음에도, 심지어 19세기 초 나폴레옹과의 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의 파괴적인 전쟁에 연루됐음에도, 이들은 유럽과 아시아라는 양극 사이에서 진자처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주기적으로 방향을 전환해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는 1702년 자신의 별장에서 캄차카반도에 표류했다가 끌려온 수수께끼 같은 일본인 포로 덴베에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동방에 매료됐고, 유수의 저명한 아시아 지리전문가와 친교를 맺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도 중국의 바다로 이어지는 새로운 북극항로를 구상하고 있었다.

“1724년 12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표트르는 평생 질시하며 동경하던 서구가 아닌 아시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한 제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북극해를 통해 중국과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방안을 깊이 고려해 왔습니다. ’”

러시아가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영토 확장과 상업적 진출, 지정학적 경쟁의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르 1세 시대(1801∼1825)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러시아는 캄차카반도를 넘어 알래스카로 진출했고, 놀랍게도 한동안 캘리포니아와 하와이를 식민지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평양 제국’이라는 장대한 계획은 영국과 미국의 견제로 실패했고, 미국에 캘리포니아 포트 로스를 매각한 뒤 다시 알래스카까지 팔아야 했다.

러시아는 이후 쿠릴열도와 사할린, 아무르강 유역 등 동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먼저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으로 청 제국이 흔들리는 틈을 타서 아무르와 우수리 유역의 영토를 제국에 편입했다. 하지만 크림전쟁 패배 후 차르의 관심이 유럽과 흑해 방향으로 집중되면서 이 거대한 극동 영토는 방치됐다.

미국에서 대륙횡단 철도의 건설이 추진되자, 러시아는 경제 부흥을 위해 유럽과 아시아 간 무역로를 장악할 계획으로 1891년부터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척박한 시베리아 환경과 막대한 유지비용으로 경제적 부흥은 고사하고 오히려 러일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한동안 쓸모없는 공간으로 방치되던 극동 지역은, 러시아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볼셰비키혁명을 아시아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이념적 욕망으로 다시 부각됐고, 냉전 시대엔 러시아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지정학적 공간으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은 러시아에게 영토이자 시장, 안보, 영광을 약속하는 무대처럼 보였다. 즉, “부동항에 대한 필요, 중국과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우월 욕구, 귀중한 무역로 장악에 대한 갈망”, 안보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팽창주의적 구상과 정책을 추진했다.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 시도는 대체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머나먼 물류의 현실, 국내의 이견, 군사적 패배 등으로 인해 희망의 거품들이 꺼지면서 구상과 정책은 소멸해 버리곤 했다.

저자는 러시아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 대체로 과도한 주관적 낙관주의로 시작된 데다가, 근본적으로는 국가적 역량을 초과했기 때문에 실패해 왔다고 분석한다. “많은 기대는 처음부터 순진했고, 또 일부는 아시아의 기회나 러시아 자신의 역량을 근본적으로 오해한 데 기반을 두었다.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영속적인 국익보다는 환상, 꿈, 그리고 착각 위에 세워져 있었다. ”

책은 마지막에 푸틴 정부의 신동방정책 ‘아시아로의 전환’을 다루고 그 미래도 내다본다. 즉 푸틴이 추진하는 북극항로가 경제적 잠재력은 크지만, 여전히 막대한 인프라 비용과 환경적 위험이라는 ‘과거의 실패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한다. 푸틴이 가장 존경하는 표트르 대제의 사례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트르는 암스테르담 및 런던과의 관계, 흑해와 발트해에서의 전쟁, 유럽 문화의 수용, 서구 정치의 모방으로 기억된다. 반면, 임종의 자리에서 꾸었던 아시아 영향력에 대한 그의 꿈은 오늘날 거의 잊혔다. ”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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