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를 대상으로 대규모 관세 인상에 나서면서,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통상 질서가 다자 무역블록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이 주요 무역권 밖에 머물 경우 불이익을 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8일 정부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는 지난 1일부터 한국·중국·인도 등 FTA 미체결국을 대상으로 자동차·철강·가전·섬유 등 총 1463개 품목에 대해 최대 5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반면 일본·캐나다·호주 등 CPTPP 회원국에는 기존 무관세 또는 낮은 관세 체계가 유지된다. 같은 시장, 같은 품목임에도 '무역블록 가입 여부'에 따라 가격 경쟁력이 갈리는 상황이 명확해진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철강·가전·섬유 등 주요 수출품목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업계에서는 관세율이 평균적으로 기존 대비 10~2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충격이 집중되는 분야는 자동차와 철강이다. 한국의 대멕시코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연간 16억달러 이상으로, 완성차보다 중간재 비중이 높다. 부품에 부과되는 관세는 현지 조립 비용을 끌어올려 가격 전가 또는 납품 구조조정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철강 역시 연간 190만t 이상이 멕시코로 수출되고 있으며, 일부 품목은 관세율이 최대 50%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자·가전 산업도 간접 영향권에 들어갔다. 멕시코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은 단기 충격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국내 협력사들은 원가 부담이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분석에서는 멕시코 내 가전 제조비용이 최대 3~4% 상승할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정부는 자동차·전자 등 주요 업종의 경우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중간재·부품을 중심으로 한 수출 기업에는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관세 구조는 국가 간 차별을 넘어 무역블록 가입 여부에 따라 경쟁 조건이 갈리는 국면을 명확히 드러낸다. 무엇보다 멕시코 한 국가의 통상 정책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각국이 양자 FTA를 넘어 다자간 경제동맹 중심으로 통상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과 CPTPP를 동시에 활용하는 멕시코 입장에서는, 자국 산업 보호와 무역 협상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선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환경 변화는 CPTPP 가입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CPTPP는 멕시코·일본·캐나다·호주·베트남 등 아시아·미주 핵심국이 참여하는 대규모 다자 통상 협정으로, 회원국 간 관세 철폐는 물론 공급망·디지털·지재권 규범까지 포괄한다. 한국이 가입할 경우 멕시코 관세 리스크를 해소하는 동시에, 특정 국가의 통상 정책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광역 안전판'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 시각은 점차 현실론으로 기울고 있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개별 국가와 FTA를 하나하나 체결하는 방식만으로는 보호무역 확산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CPTPP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 조건을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CPTPP 가입을 둘러싼 국내 논의가 순탄하지만은 않다. 가장 민감한 쟁점은 여전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다. CPTPP 가입 시도를 할 경우 협정의 맹주인 일본이 수산물 수입 규제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정부 내부에서도 부담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농어업계와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CPTPP는 곧 일본산 수산물 수입 확대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로 인해 정부부처 간 온도 차도 감지된다. 산업·통상·외교 당국은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와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CPTPP 가입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농림·해양 분야를 담당하는 부처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국내 산업 보호와 사회적 갈등 가능성을 이유로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CPTPP가 단순한 관세 협정을 넘어 국내 규제·검역·식품 안전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부처 간 이해관계가 쉽게 정리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CPTPP 가입은 통상 전략 차원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경제적 실익과 국내 민감 이슈를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멕시코 관세처럼 외부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부 갈등을 무시한 채 속도를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관세 인상 조치는 CPTPP 논의의 방향을 분명히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들어가도 문제, 안 들어가도 문제'였다면, 이제는 '들어가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 숫자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관세 인상, 공급망 차별, 투자 위축 등 불이익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CPTPP 미가입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이냐는 질문이 산업 현장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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