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용산 개발, 주택공급 논리에 흔들려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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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용산 개발, 주택공급 논리에 흔들려선 안 돼
서울의 심장부 용산은 단순한 개발 부지가 아니다. 45만6000㎡에 달하는 이 땅은 강남과 강북을 잇는 균형축이자, 대한민국 산업 구조를 재편할 국가적 자산이다. 여의도·강남과 함께 서울 3대 경제축을 완성할 전략적 거점, 바로 그래서 용산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부른다. 그러나 지금, 그 거위의 배를 갈라 당장의 금을 꺼내 쓰자는 조급한 유혹이 거세다. 눈앞의 주택공급 수치는 달콤하지만, 그 대가로 서울의 백 년 먹거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설계 철학은 애초부터 분명했다. 주택 단지가 아니라 국제금융, 첨단산업, 컨벤션, 문화가 어우러진 고부가가치 업무 중심지로 조성하는 것이다. 당초 계획된 주거 기능은 약 6000세대, 전체 면적의 30% 수준으로 오피스·호텔·문화시설을 보완하는 보조적 요소에 불과했다. 이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국제업무지구’라는 이름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윤혁경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총괄 PM 물론 주택난 해소는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국가 전략 거점을 희생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최근 거론되는 ‘2만 호 공급’은 국제업무 기능을 포기하고 용산을 단순 주택 단지로 전환하자는 발상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숫자 자체가 허구라는 점이다. 주거 규모가 늘어나면 학교·공원·교통·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을 전면 확대하고 재설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거용 부지는 오히려 감소하고, 결국 공급 물량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개발계획 재수립과 인허가 절차로 수년간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불확실한 주택공급을 위해 확실한 국가 전략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미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재건축 사업 기간 단축 등 실효성 있는 공급 수단을 가동 중이다. 여기에 건축공사비 안정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확대, 장기 모기지 제도 도입 등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외곽 훼손된 그린벨트의 단계적 전환을 병행하면 충분한 공급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숫자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 전략이다.

세계 주요 도시는 이미 ‘업무 중심 복합도시’의 성공을 증명했다.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는 금융 특구로 출발해 고급 주거가 자연스레 형성됐고,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와 런던 카너리워프 역시 금융·업무 중심의 글로벌 허브로 발전했다. 뉴욕 허드슨야드는 68%, 도쿄 롯폰기힐스는 75%를 비즈니스 용도로 배치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거를 앞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제 경쟁력은 아파트 숫자가 아니라, 업무·금융·문화가 순환하는 생태계에서 나온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서울의 미래 먹거리다. 2030년까지 32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14만6000명의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 이는 서울이 도쿄·싱가포르·홍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다.

도시의 품격은 ‘얼마나 많이 지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느냐’로 평가된다. 용산이 국가의 미래를 여는 황금알이라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거위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키우는 일이다. 단기 공급 수치에 흔들려 전략적 가치를 훼손할 것인가, 아니면 백 년 도시 서울의 품격을 완성할 것인가. 이 선택이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한다.

윤혁경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총괄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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