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7년 동안 수많은 산불을 겪어왔지만, 처음 겪어보는 규모의 산불에 기관장으로서 선택했던 결정들을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함께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안호경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장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그 불길 속에서도 우리는 끝내 흔들리지 않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15L에 달하는 등짐펌프를 짊어지고 가파른 절벽 위를 오르내리던 신규직원들부터, 2주에 걸친 기간동안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320명의 직원들. 또, 소방호스를 붙잡고 최전선에서 싸우던 이들까지. 직급과 소속을 구별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현장을 움직이던 그들의 행동은 단순히 사명감을 넘어 국립공원을 향한 애착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한편, 불길과 맞서 싸운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사무소 안에서도 밤을 지새우며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동선을 조율하며, 진화 인력을 위해 식사와 숙소를 마련하는 등 현장을 지탱한 이들이 있었다. 불을 끄는 손, 식사를 준비하는 손, 피로에 젖은 어깨 위에는 오로지 ‘해내야 한다’라는 다짐만이 있었다.
국민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지역 주민들이 나눠준 부식부터 전국 각지에서 배달된 김밥, 곳곳에 걸린 ‘감사’와 ‘이겨내자’라는 마음이 담긴 현수막에는 모두의 따뜻한 응원이 담겨있었다.
그럼에도 불길은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듯 계속 타올랐고, 현장은 뜨거운 숨결로 일렁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뜨거웠던 직원들의 책임감 덕분에 13일간 계속되던 산불이 끝내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 산불은 주왕산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한마음으로 대응했던 우리의 연대를 되새겨보고, ‘함께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지나 3월 25일부터 2주간 계속된 모두의 헌신은 이곳의 뿌리가 돼 회복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또, 조직은 위기 속에서 ‘메뉴얼’을 넘어 ‘사람’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배웠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협력을 바탕으로 주왕산의 맥을 다시 잇고, 국민들의 품으로 되돌려주고자 한다.
내년이면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반세기동안 수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산은 산불로 인한 피해를 딛고 서서히 푸르름을 되찾아가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자연과 인간이 함께 일구어낸 회복과 생명을 느끼며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
안호경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