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전제품 분야에서 이어오던 '냉난방' 기술경쟁을 데이터센터 공조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한 소비자 시장 대신, 상대적으로 기술장벽이 높아 진입이 어려운 데이터센터 공조 분야를 선점해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데이터센터의 급증과 함께 공조 기술과 공기질 관리 역량이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하면서, 공조 기술 고도화 및 산업용 냉난방 솔루션 확보는 가전업계의 미래 수익원을 좌우할 관건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6일 유럽 최대 공조업체인 독일 플랙트 그룹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인수 후에도 플랙트의 사명과 기존 경영진·임직원을 유지해 기존 네트워크와 기술력을 그대로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플랙트 인수로 삼성전자는 데이터센터 관련 공조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인수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 면면도 데이터센터 공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단 플랙트가 이 분야에서 역사와 기술력을 모두 갖췄다. 독일 기업인 플랙트는 1918년 설립돼, 107년의 업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서 데이터센터와 대형 상업시설, 병원 등을 위한 중앙공조, 정밀 냉각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10여개의 생산거점과 유럽·미주·중동·아시아까지 폭넓은 판매·서비스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터널·선박·방위산업용 환기, 화재 안전 시스템을 제공하는 '우즈', 공기조화·유동 솔루션을 담당하는 '셈코', 자동화 기반 빌딩 제어 전문 회사 'SE-일렉트로닉' 등 자회사들도 운영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유럽 중앙공조 시장에선 점유율 12.2%를 차지해 1위를 하고 있다. 2016년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2020년 영국 이스트 미들랜드 데이터센터, 2023년 핀란드 로바니에미 병원 등에 시공한 중앙공조 시스템들이 플랙트의 대표 작품들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해 5월 미국 냉난방공조(HVAC) 기업 '레녹스'와 함께 합작법인을 설립한 바 있지만, 이번 플랙트 인수는 그보다 공조 시장 진출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피력한 행보로도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이를 통해 플랙트 인수 효과를 보기 시작한다면, 먼저 시장을 활보하고 있는 LG전자와의 경쟁에도 불이 지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단 조금 더 발 빠르게 공조 시장 경쟁에 힘을 불어넣어 왔다. 지난해 말 HVAC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에코 솔루션(ES) 사업본부를 신설하는 등 조직부터 정비했다. 2030년까지 이 분야에서 매출 20조원을 달성하겠단 목표도 세웠다. 이후 관련 솔루션들을 개발하며 기술을 고도화하고 글로벌 기업, 각국 정부들과 주요한 공급 계약들을 성사시켰다. 우리나라는 물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방글라데시 다카, 멕시코 베니토 후아레스, 콩고공화국 마야마야 등 세계 각지에 있는 공항에 고효율 냉각장치 '칠러'를 공급했고 지난 4월에는 싱가포르의 초대형 물류센터의 초고효율 HVAC 솔루션을 제공할 단독 공급자로 선정됐다. 지난 9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의 첨단 산업단지 '옥타곤'에 조성되는 AI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냉각 솔루션을 공급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공급 규모는 약 7조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G전자에 이어 삼성전자까지 공조 시장에 뛰어든 건, 빠른 속도로 넓어진 시장의 지평과 큰 수익을 예고한 시장 전망 등이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리서치 네스터' 등 시장조사업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세계 공조시장 규모는 올해 2409억1000만달러(약 347조원)를 넘었고 2035년에는 4522억2000만달러(약 651조원) 이상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중 데이터센터 관련 공조는 지난해 167억 달러(약 24조원)에 이르렀던 시장 규모가 2030년이 되면 441억 달러(약 63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십자말풀이 풀고, 시사경제 마스터 도전! ▶ 속보·시세 한눈에, 실시간 투자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