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패닉바잉'…삼성, 가격협상도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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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패닉바잉'…삼성, 가격협상도 보류

D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더 오르기 전에 구매하려는 '패닉바잉(Panic Buying)'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DDR5 현물 최고가는 하루에 1달러씩 오르며 연내 30달러 돌파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가격이 급등하자 주요 메모리사들이 고객사 협의를 이유로 계약을 보류하거나 시기를 늦추는 움직임까지 관측되고 있다. PC·스마트폰 등 완제품 제조사들의 공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반도체 업계와 대만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고객사와의 반도체 DDR5 고정거래가격 책정 협상을 이달 중순으로 미뤘다. DDR5는 차세대 컴퓨터용 반도체 메모리로, 고성능 데이터 처리에 쓰인다. 이달 중순에 다시 협의를 시작할지도 불확실하다는 말이 나온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도 최근 같은 방식으로 가격 책정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기업마다 D램 구매 조건이 달라 가격 협의 보류 범위를 특정하긴 어렵다"고 했지만, 일부에서 실제로 미뤄졌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소부장업계 관계자는 "최근 메모리사들이 고객사가 필요로 하면 즉각 제공되던 현물을 줄이고 몇달씩 장기 공급 형태로 많이 유도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고객사들 입장에선 당장 D램이 필요해도 즉각 받을 수 있는 현물이 없어지니까 비싸더라도 사는 형태가 나타나면서 현물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메모리 업체들이 공급 협상을 잠정 중단한 건 D램 가격이 계속 급등함에 따라 시장 추이를 본 뒤 높아진 시장 가격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고정거래가격을 높여 수익을 더욱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이번을 기회 삼아 메모리 3사가 D램의 고가를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 대기업들과의 장기 거래에 보다 힘을 주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편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계약 보류 움직임은 최근 시장에서 D램을 '최저가'로 판단한 일부 기업들이 매수에 나서며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AI 개발에 D램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금 여력이 부족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선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가격이 오르자 무작정 물량 확보에 나섰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D램 인플레이션' 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패닉바잉은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트렌드포스와 D램익스체인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일 DDR5 16Gb(2Gx8) 4800/5600의 현물거래 최고가는 24달러, 평균가는 16.125달러였다. 현물거래는 특정 하루 동안 실제 형성된 거래 가격으로, 시장 심리를 즉각 반영하는 지표로 평가된다. DDR5 현물 최고가가 하루에 1달러씩 높아지면서 연내에 30달러를 넘길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이달 말에 발표될 기업 간 고정거래가격도 15달러를 넘기고 연중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란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메모리 기업들의 고객사들은 D램 가격이 앞으로 안정화될 것이란 확신을 얻지 못하고 당장 비싼 가격에라도 D램을 매입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내년 상반기까지 분기당 30~50%씩 가격이 올라 DDR5 16Gb 가격은 3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전무는 "7달러(10월 D램 범용제품 고정거래가격)도 비싼 수준이고 보통 23달러~30달러 수준이면 구매를 거부할 수준의 가격"이라며 "30달러 가까이 주고 이뤄진 거래라면 당장 D램이 급해서 샀거나 아니면 패닉바잉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반도체 가격 협상이 잠정 보류되면서 PC·스마트폰 등 완제품 제조 뿐 아니라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협상 지연으로 완제품사들의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D램 가격 급등은 메모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촉발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엔비디아, AMD를 비롯한 빅테크들이 뛰어든 AI반도체에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같은 메모리가 필수다. 고성능 메모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만이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가격 오름세도 지속될 전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메모리 공급 병목이 심화되고 있다"며 "GPU보다 메모리 칩 공급이 더 큰 제약 요인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요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메모리 칩 공급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 생산망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업계는 D램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킬 열쇠가 결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기업의 생산능력 확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들 기업이 증설이나 설비투자로 공급을 늘리지 않는 한, 시장 가격과 납품 구조는 판매사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D램 시장의 주도권이 구매사에서 판매사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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