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국내 인구는 3500만명 수준으로 줄 겁니다. 그만큼 해외에서 3500만명을 데려와야 해요. 그러려면 관광이, 그중에서도 고부가가치 의료관광이 살아야 합니다. 성형외과 한 곳이 건당 2000만~3000만원씩 외화를 법니다. 우리는 이미 수출기업이에요. 이런 병원들도 ‘수출의 탑’에 이름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김진국 한국의료관광진흥협회장은 안과 전문의로 높은 명성을 쌓았고 이제 국내 의료관광 확대와 발전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김 회장이 인터뷰에서 국내 의료관광사업 확대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김두홍 기자 라식을 처음 국내에 도입한 의사, 인공지능(AI) 안과 솔루션으로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이름을 올린 혁신가. 1994년 개원한 비앤빛 강남밝은세상안과를 30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로 키워낸 김진국 한국의료관광진흥협회장의 이야기다. 김 회장은 단순히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아니라, 의료 산업의 생태계를 바꾸고 싶은 개척자다. ‘마흔 살까진 돈을 안 모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돈을 버는 족족 장비를 사 병원을 키우고 이후에는 AI 분야로까지 눈을 돌려 발전을 이어왔다. 그는 이제 ‘의료관광’을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지목한다. 자유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고부가가치 의료산업을 육성하고 한국 재방문율을 높이는 전략이 그것이다. AI로 혁신을 이끌었던 그가 이제 K-메디컬과 웰니스 관광으로 한국 경제의 체온을 높이려는 도전에 나섰다. 이를 위해 한국의료관광진흥협회를 세웠다.
20일 서울 강남 비앤빛안과에서 만난 김 회장은 “대한민국의 잠재성장률이 4%대에서 지금은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소비를 살리는 것, 그리고 관광을 통한 내수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의료와 웰니스의 결합’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 안과 병원을 운영하며 관광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의료와 여행의 접점을 누구보다 깊이 고민해온 그다.
◆“혼자선 못 한다”… 뜻 맞는 의료인들과 만든 의료관광 연대
김 회장이 의료관광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의료관광이 단지 ‘외국인 대상 시술’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체온을 높이는 산업”이라고 표현했다. 또 “관광은 지역소멸, 청년실업, 인구감소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라며 “특히 의료관광은 체류 기간이 길고, 재방문율이 높다. 방문이 곧 소비, 그게 바로 한국 경제를 따뜻하게 만드는 순환”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의사 선배들이 돈을 벌면 보통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골프 치러 다니시더라. 그런것도 좋지만 ‘세상에 목소리 한 번 내보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나 혼자 주인공이 되자’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쪽이었다. 그는 각기 다른 의료 분야가 하나의 콘셉트로 묶여야 한다고 본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가 눈 수술을 받으면서 동시에 피부 시술·치아 교정·모발 이식·성형·통증 치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 그렇게 뜻이 맞는 의료인들과 함께 한국의료관광진흥협회를 세웠다.
김 회장은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모발이식, 통증의학과 등 각 분야의 병원들이 연대해 ‘하나의 한국 의료관광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외국 환자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하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한류가 만든 신뢰, 의료가 완성한다
김 회장은 의료관광을 단순한 시술 여행이 아닌 ‘고부가가치 수출 산업’으로 본다. 그는 “K팝, K드라마가 신뢰를 만들었고 K뷰티·K메디컬이 그 신뢰를 산업의 언어로 완성하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17만 명. 외국인환자 유치 제도 도입 이래 최대 규모다. 이들의 의료·숙박·교통·쇼핑비를 합치면 7조5000억원이며 이로 인한 생산유발효과는 13조8000억원, 일자리는 14만 개가 생겼다.
◆의료관광, 사람을 고용하고 외화를 법니다 그는 의료관광을 제조업과 같은 ‘수출형 산업’이라고 정의했다. “강남·명동의 150평짜리 피부과가 월 20억을 번다. 이건 곧 외화 수입”이라며 “제조업은 자동화할 수 있지만 의료관광은 사람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다. 통역·코디·간호·호텔·식음으로 이어지는 고용유발 효과가 막대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관광을 청년 일자리의 파이프라인이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2017년 기준 2만8000개의 일자리가 생겼고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며 “서울 중심의 병의원 수요를 지방의 웰니스 산업과 연결하면 청년층이 지방에서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관광이 곧 복지이자 일자리가 되는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필요한 범부처 통합… “외국인이 편해야 온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의료관광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도 지적했다. 바로 제도의 분절이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봤을 때 관광객 관할은 법무부, 보험은 복지부, 홍보는 문체부, 결제는 기재부 관할”이라며 “이렇게 따로 움직이면 산업이 자라질 못한다. 이제는 범부처 통합회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제안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의료비자 발급을 의료기관에 위탁하고 장기체류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다. 알리페이·유니온페이 같은 글로벌 결제수단과의 연동도 필요하다. 외국인을 위한 언어 편의성도 높여야 한다. QR 코드만 스캔하면 다국어로 병원·교통·음식 정보를 볼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의료사고 보상제도 강화를 통해 신뢰를 제도화하는 것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외국인 후기·콘텐츠 활용에 대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내다봤다. 그는 “외국인이 와서 ‘쉽다,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한국은 다시 찾을 나라가 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미용·성형 부가세 환급, 유지돼야 외국인 환자 증가
부가세 환급제도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외국인 환자가 한국에서 쌍꺼풀수술이나 코성형, 지방흡입 등 미용·성형 진료를 받을 경우 적용되는 부가가치세 환급(텍스프리) 제도가 올해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2016년 4월 시행된 ‘외국인관광객 미용성형 의료용역 부가세 환급 특례’는 복지부 등록 유치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출국장이나 도심 환급창구에서 세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의료계와 관광업계는 한국 의료관광의 ‘가성비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필수 장치라며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외국인 환자 유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부가세 환급제가 연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다. 실제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는 환급제도 연장에 대해 올해 안에 기획재정부와 이 문제를 재차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환급된 부가세가 소비를 촉진하고 재방문을 이끈다”며 제도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955억 원의 부가세 환급이 사라지면 7조 원의 시장에 제동이 걸린다”며 “정부가 세수를 걱정할 게 아니라 정책 투자 대비 경제효과를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서울은 코어, 지방은 리커버리… 의료·힐링 어우러져야
김 회장은 한국 의료관광의 지속가능성을 ‘연결’에서 찾고 있다. “서울은 시술과 진단의 코어 역할을 하고 지방은 회복과 체험의 무대가 돼야 한다”며 “서울에서 시술하고 남해에서 쉬며, 강원에서 명상하는 루트, 이게 진짜 의료관광”이라고 말했다.
지역마다 강점을 보이는 웰니스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동해에서는 온천과 해양요법, 제주에서는 클린푸드·발효체험을 묶어 하나의 패키지로 만드는 식이다. 김 회장은 “서울에서 시술받은 환자가 지방에서 회복하면 자연스럽게 숙박·식음·교통 소비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골든타임”… 후발국이 쫓아오고 있다
사실 한국뿐 아니라 의료관광에 특화된 국가가 적지 않다. 그는 최근의 의료관광 경쟁을 ‘총성 없는 외교전’이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태국은 이미 의료관광 강국이지만, 한국의 부상에 긴장하고 있다”며 “다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상하이 같은 곳은 특구를 만들어 한국 의사에게 면허를 주려 하고 있다. 우리가 늦으면, K뷰티와 K메디컬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지금이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골든타임”이라 단언했다. 그는 “K컬처의 신뢰가 한국 의료로 번지고 있다”며 “이 에너지를 제도와 시스템으로 묶지 못하면 후발국에게 순식간에 따라잡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제도가 산업의 크기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도 크면 신발을 갈아 신지 않나. 한국 의료관광은 이미 몸집이 커졌다. 부처별 칸막이를 없애고 핵심성과지표(KPI)를 ‘통합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