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으로는 (한국 시장을) 신뢰할 수 없다. 나뿐 아니라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도 실질적 증거를 기다리고 있다. "
세계적 투자전략가인 데이비드 로치 퀀텀스트래티지 창업자(사진)는 새 정부 출범 후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한국 증시가 랠리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보다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혁이 담보되지 않는 한, 최근의 주가 상승도 일시적 반등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다.

로치 창업자는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증시가 저평가받는 요인으로 ▲북한과의 지리적 근접성 ▲최근 발생한 민주주의 취약성 ▲재벌가의 기업 소유 및 지배구조 투명성 부족 ▲주식시장 내 섹터 비중 등 4가지를 꼽았다. 모건스탠리 출신의 저명 투자전략가인 그는 과거 미국 월가에서 가장 먼저 1997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고했던 인물로, 인디펜던트스트래티지에 이어 최근 싱가포르에 퀀텀스트래티지를 창업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먼저 로치 창업자는 한국 자본시장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북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짚었다. 또한 지난해 12월 발생한 계엄 사태가 한국의 민주적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은 위험이 줄었으나,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다"면서 "대부분의 (해외) 투자자들은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제도적 개혁을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그는 한국 국회가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자마자 해당 사태를 '찻잔 속 태풍'으로 규정하며 한국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침착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혁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로치 창업자는 "(한국 기업은) 재벌의 가족 소유 구조, 낮은 투명성 등으로 인해 주주 가치보다는 소유주(재벌가)의 이익이 우선시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한국 자본시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개혁으로도 "소유구조(지배구조) 개혁, 투명성 제고, 순환출자 해소, 주주가치 실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한국 증시 가치 제고에 얼마나 중요하냐는 추가 질문에는 "매우 (Very!!!!!)"라고 느낌표를 무려 다섯 개나 찍었다.
이와 함께 로치 창업자는 "한국 증시의 섹터 비중은 다른 시장과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몇몇 재벌 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고, 더 구체적으로는 기술 및 제조업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표 종목의 하락세만으로도 코스피 자체가 출렁이는 구조 자체를 문제로 지목한 것이다. 이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25~30% 상당이다. 그는 "한국 전체 시장에 투자해도 동종 시장 대비 분산 효과가 약하다는 의미"라면서 "결과적으로 한국 주식은 더 높은 리스크를 갖는다. 이는 더 낮은 주가수익비율(PER)로 이어진다"고 부연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로치 창업자는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반기면서도 임기 내 '코스피 5000' 달성을 사실상의 목표로 앞세운 데 대해서는 "어리석은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주가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주가를 개선할 수 있는 개혁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재차 지배구조 개혁, 순환출자 해소, 주주가치 실현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상법 개정 등에 힘입어 외국인 순매수가 이어지고 코스피가 3600선을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회의론이 많다는 점 역시 주목했다. 오랜 기간 투자전략가로 활약하며 한국 증시를 지켜봐 온 로치 창업자는 "재벌 개혁과 관련해 수없이 많은 헛된 여명(false dawns)을 겪은 사람으로서, 이제는 말만으로는 신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간 한국 정부 차원의 개혁 시도가 번번이 무산된 사례를 수없이 지켜봐 온 만큼, 이번에도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나뿐 아니라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도 실질적 증거를 기다리고 있다"고 추가적인 진전, 개혁의 지속성과 일관성이 담보돼야만 한국 증시에 따라붙은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꼬리표가 사라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로치 창업자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세계 질서가 점점 분열화되고 있다는 점 역시 향후 한국의 자본시장 개혁 움직임에 도전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이 외교관계를 금전적 이해관계 중심으로 전환하는 현 상황은, 세계에서 가장 국제화된 경제 중 하나인 한국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국이 연내 주식시간 거래를 연장하고 향후 미국 나스닥처럼 24시간 체제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장기적으로 시장 평가를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봤다. 다만 "거래 시간이 늘어나면 시장 충격을 더 원활하게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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