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비전과 야심, 절묘한 캐스팅, 최정예 스태프진, 막대한 자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1일 개봉·포스터)는 이 모든 요소가 정확히 맞아떨어져 완성된 걸작이다. 앤더슨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파시스트 국가로 전락한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민자 무차별 체포, 군·경 통합 권위주의 체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음모, 무장 반군의 저항까지. 영화는 현대 미국 사회의 정치적 불안을 직시한 채 트럼프 시대의 그림자를 스크린 위에 옮긴다.
이야기는 혁명 조직 ‘프렌치 75’의 작전으로 시작한다. 리더 ‘퍼피디아 베벌리힐스’(티야나 테일러)와 그의 연인이자 동지 ‘게토 펫’(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조직원들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관료들을 인질로 잡고 이민자들을 석방한다. 작전 중 퍼피디아는 ‘스티븐 록조’(숀 펜) 중령에게 성적 굴욕을 안기며, 두 사람의 질긴 악연이 시작된다.
16년 후, 혁명의 에너지는 사그라들었고, ‘게토 펫’은 이제 ‘밥’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무기력한 중년 약물 중독자가 됐다. 그는 퍼피디아가 남긴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홀로 키운다. 한편, 록조는 여전히 저항 세력을 추적하며 프렌치 75 잔존 세력에 대한 무력 진압을 재개한다.
영화는 후반부 록조에게 납치된 윌라를 구하기 위한 밥의 필사적인 추적극으로 전환된다. 도로가 아래로 급격히 꺼졌다가 다시 솟구치는 지형에서 촬영한 후반부 자동차 추격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록밴드 라디오헤드 출신인 조니 그린우드가 불협화음으로 빚어낸 음악은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디캐프리오는 ‘혁명가’와 ‘아버’라는 이중적 역할을 흠잡을 데 없이 소화했고, 신예 인피니티는 단숨에 스타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군인의 엄지격함과 억눌린 욕망이 공존하는 광기를 숨 막히게 연기해낸 펜이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이 영화는 북미 개봉 첫 주 글로벌 흥행 수익 4850만달러(약 654억7500만원)를 기록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는 앤더슨의 작품 중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다.
유일한 아쉬움은 161분의 상영 시간이다. 너무 길어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영화가 끝날 때면 “30분만 더!”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완전히 미친 작품”이라고 평했다. 정말로 그렇다.
이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