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상영을 마치고 돌아온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얼굴은 배우의 연기로 꽉 찬 영화다. 감정적 스펙트럼을 큰 스크린에서 보니 좋더라”는 말로 운을 뗐다. 순 제작비 2억4000만 원, 13회차 촬영으로 완성한 얼굴은 개봉 하루 만에 3억 원 이상의 누적매출을 달성했다. 30일 영화진흥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누적관객수는 91만 명을 돌파했다. 100만 관객 앞두고 있는 이 영화는 연 감독이 부산행(2016) 이전부터 품고 있던 이야기다.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권해효)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동명의 그림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비판 의식으로 ‘태초의 연상호 유니버스’ 귀환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극장용 영화로는 2020년 반도 이후 5년 만이다.
연 감독은 “막상 투자를 받아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안되더라. 영상화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그래서 만화라도 세상에 내놓고 싶어 2018년에 책으로 만든 거다. 한동안 영상화를 포기했었다. 같이 일하는 제작진에게도 몇 번 말했는데 다들 ‘글쎄요’ 이런 반응이었다”라고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다 변화가 찾아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유튜브를 많이 보길래 자신도 “유튜브엔 너무 재밌는 게 많더라. 한편으로는 콘텐츠 창작자로서 위기감 같은 게 느껴졌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재밌는 영상을 적은 예산으로 만드는데, 내가 경쟁력이 있을까 싶었다”라고 돌아봤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아내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다. ‘저 팀은 매주 저렇게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직업으로 살아남을까’ 싶더란다. 그럼 저예산으로 만들어보라는 아내의 말에 외부 투자 없이 초저예산으로 얼굴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시대 배경을 2억 원으로 구현하는 건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시대가 있다 보니 시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나 연구를 했다. 그러다 피와 뼈(2005)라는 영화를 봤다. 한 골목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다. 현장의 크기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함축적으로 배경을 표현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라고 한다.
예산 구조도 파격적이었다. “현 시점에 영화를 이 정도 예산에 만든다고 하면 투자 안 하겠다는 곳이 없을 거다. 저희 제작사에 있는 돈으로 하는 걸 만들었다. 제작사이자 순수 투자자가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등 메인 배우들과 핵심 스태프들은 노개런티 또는 거마비만 받거나 최저시급 형태로 정산을 받았다. 대신 배우와 주요 스태프에게 제작사 지분의 대부분을 줬다.
이어 “나중에 잘되면 보너스 형태가 아니라 명확한 지분으로 계산을 해서 그대로 나가는 거다. 잘되면 축제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촬영은 13회차로 진행됐다. 연 감독은 “스태프에게 부담이 없는 회차로 찍겠다고 했었다. 심지어 객원처럼 한두 번씩 나와서 찍어준 분들도 많았다. 면면이 화려하다. 눈물의 여왕 촬영감독님 등 품앗이처럼 와서 찍어주기도 했다. 연출부는 단 3명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아리방 사람들 같은 느낌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순식간에 찍어갔다”라고 설명했다. 예상 관객수 관측이 어려워진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온 얼굴이다. “전에는 어떤 식으로 기획하면 어느 정도 번다, 이런 게 있었다. 지금은 그 룰이 없졌다.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시기다”라며 “하지만 얼굴 같은 시스템화가 되어야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 중 하나라고 봐주시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연 감독은 “3~4년간은 계속 다른 무언가를 도전 해보려고 한다. 그전에 안 해본 환경에서 일해보려 한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촬영 끝내고 뭔가 만들어내는 게 습관 같은 형태가 되길 바란다. 정말 잘 안 들어지는 버릇이 창작하는 버릇이다. 그래서 좋든 나쁘든 소설을 1년에 1권씩 내려고 하고 실제로 세상에 내고 있다”며 “창작을 습관처럼 이어가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