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에 집을 사는 서울 거주민 수가 확 늘었다. 악성(준공 후) 미분양 적체 등 침체 국면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매수세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6억원 제한에, 호재가 있는 지방 부동산에 눈을 돌리는 수요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도 세컨드홈(제2주택) 지원 확대 등 지방 시장 활력에 나서, 매수 심리 기지개가 상승 추세로 발전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경남 등 지방 부동산 사들인다
17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비수도권 집합건물(오피스텔·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주택 등)을 매수한 서울 거주민의 수는 138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수도권 대출 규제 이전인 지난 6월 1257명과 비교할 때 125명 늘어난 수치다. 서울 내 부동산을 사들인 서울 주민의 수가 같은 기간 1만6068명에서 1만2533명으로 22% 줄어든 것을 비교할 때 대출 규제를 비껴간 지방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 부동산을 사들인 서울 거주민은 비수도권 중에서도 호재가 뚜렷한 지역에 관심을 가졌다. 대출 규제 후에도 매수세가 늘어난 지역은 경상남도(77명→329명, 327.2%), 강원도(159명→419명, 163.5%), 충청북도(68명→126명, 85.3%)에 국한됐다.
경남은 해양수산부가 창원 진해신항과 부산항을 스마트항만으로 지원하고자 4622억원의 투자금을 배정한 곳이다. 북극항로 활성화 시 물동량 증가로 인해 수혜도 예상된다. 진해구 신시가지에는 아파트 등이 건설된다.
강원도 원주와 춘천 부동산 시장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연장 기대감이 반영됐다. 원주에는 강남을 거쳐 김포·인천으로 이어지는 GTX-D 노선이, 춘천엔 송도에서 여의도, 서울역, 청량리 등을 거치는 GTX-B 노선이 연장 사업으로 들어선다. 충북에서는 SK하이닉스,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이 자리 잡은 청주테크노폴리스 덕을 본 결과로 분석된다.
울산·부산, 부동산 시장도 주목
이들 지역 외에도 울산 부동산 시장도 정책 수혜에 주목받고 있다. 한미 간 조선 협력 강화를 내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에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울산에는 580여개 조선업체가 밀집해 있는데 마스가 프로젝트 추진 시 산업 부흥에 이어 인구 유입으로 인해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울산은 분양 전망도 밝은 편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 사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9월 아파트 분양전망지수에서 울산은 전월보다 33.8포인트 오른 107.1로 나타났다. 해당 지수는 주택 사업자를 대상으로 분양을 앞두고 있거나 분양 중인 단지의 여건을 조사해 수치화한 지표다. 100.0을 초과하면 분양 전망이 긍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산연은 "비수도권 중 울산은 이 지수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며 "이는 최근 울산이 한미 간 조선 협력으로 추진되는 마스가 프로젝트의 최대수혜지역으로 예상된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충북 16.7포인트, 대전 14.7포인트, 경상북도 9.6포인트, 경남 1.9포인트 상승했다.
부산도 인근 부산 북항으로 해수부가 이전한다는 호재에 부동산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다. 북항과 인접한 동구 아파트 매매 건수는 지난 1월 42건에서 지난 7월 70건까지 늘어났다. 해수부 공무원 약 850명이 이동하고, 가족과 소속·유관 기관 종사자까지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수천명의 인구 유입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HMM 등 해운기업 이전과 해사전문법원·동남투자은행 설립 등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같은 호재는 부산 전체 부동산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9월 첫 주 전국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 결과, 부산 아파트 매매가격은 3년 만에 하락세가 멈춰 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컨드홈' 정책 강화
정부가 세제 지원을 통해 세컨드홈 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지방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정부는 '지방 중심 건설투자 보강방안'을 발표했는데 지방 부동산 수요를 보완하기 위해 인구감소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구입에 대한 세금 감면 조치(취득세 최대 50% 감면, 양도세·보유세 특례 등)를 하기로 했다. 기준도 집값 기준(공시가) 4억원에서 9억원, 취득가 기준 3억원에서 12억원으로 완화했다. 아울러 인구감소 지역 외에도 강릉·속초·경주·통영·익산·김천·사천·인제·동해 등 9곳도 세컨드홈 지정 대상 지역에 새로 포함했다.
다만 미분양 문제가 여전할 만큼 지방 시장이 침체기인 만큼 세컨드홈 투자에 접근할 땐 당장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보단 효용 가치 측면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인구가 감소하는 데 갑자기 수요가 늘고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어렵기에 효용 가치가 있고 가성비가 좋은 매물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라며 "지역 소멸 위기가 대두되는 상황이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는 '세컨드홈' 지원 대상을 넓히는 등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