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연상호, 가볍게 찍고 무겁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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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연상호, 가볍게 찍고 무겁게 묻다
2억원 들인 초저예산 장편 ‘얼굴’ 박정민·권해효 등 노개런티 출연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약 94억원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은 약 2억원의 초저예산으로 장편영화 ‘얼굴’(11일 개봉)을 완성했다.

‘얼굴’은 3주의 촬영 기간, 20여 명의 최소 제작 인원 등 기존 상업영화와는 다른 제작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등 유명 배우들은 거마비 수준의 출연료를 받고, 흥행 시 러닝 개런티를 받는 조건으로 참여했다. 연 감독은 이러한 실험에 대해 “새로운 영혼의 영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육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육체에 해당하는 프로덕션에 변화를 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박정민, 권해효 제작 규모는 작지만 주제는 더없이 무겁다. 영화는 연 감독이 2018년 출간한 그래픽 노블 ‘얼굴’(세미콜론)을 원작으로 한다.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입지전적 성공을 이룬 전각(篆刻·도장에 글씨를 새김) 장인 ‘임영규’(권해효)의 아들 ‘동환’(박정민)이 40년 전 실종된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 발견 소식을 듣고 과거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박정민은 영규의 젊은 시절과 동환을 맡아 첫 1인 2역 연기를 펼쳤다. 영규의 성공신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방송국 PD는 동환과 함께 과거를 추적한다.

영희는 1970년대 서울 청계천 피복 공장 ‘시다’ 출신. 당시 공장 노동자들을 찾아 어머니 죽음의 단서를 수소문하는 동환에게,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희는 괴물 같은 추녀였다”, “똥걸레라 불렸다”며 멸시의 언어를 쏟아낸다. 영희의 얼굴은 결말 직전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뒷모습 또는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윤곽으로만 등장하는 영희 역을 맡은 신현빈은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상상하게 하기 위해 목소리와 몸짓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얼굴’은 영희의 사연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성장주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시각장애인 영규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누구보다 예민하게 미와 추, 그에 내재한 위계를 감지하는 인물. 그는 ‘살아있는 기적’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될 만큼 성공했지만, 그 뒤에는 존재 자체가 지워진 누군가가 있었다.

이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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