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금융지배구조 개편은 금융기업가정신을 키우는 방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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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상컬럼] 금융지배구조 개편은 금융기업가정신을 키우는 방향이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19일부터 23일까지 KB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농협금융지주·iM금융지주·BNK금융지주·JB금융지주 등 8개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전반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회장 연임 절차와 이사회 운영, 사외이사의 독립성 등 실제 작동 현황이 대상이다. 은행지주들이 2023년 마련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형식적으로만 이행하거나, 편법적으로 우회하고 있다는 지적이 배경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또 한 번의 지배구조 논쟁이다. 관치냐 자율이냐, 연임이 문제냐 아니냐를 둘러싼 익숙한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이 사안을 그 수준에서만 보면 본질을 놓친다. 왜 하필 지금, 금융당국은 지배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반도체와 플랫폼, 바이오와 신산업이 국가 성장의 핵심 변수가 된 시대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에 어디까지, 언제, 얼마나 자본을 배분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 판단의 상당 부분을 금융이 맡고 있다. AI 시대에 금융의 역할이 과거보다 훨씬 무거워진 이유다.
 
그런데 우리의 금융은 여전히 ‘관리의 논리’에 머물러 있다. 무사고, 단기 실적, 관행적 합의가 최고의 미덕처럼 작동해 왔다. 이사회는 책임을 나누는 안전한 선택에 익숙했고, CEO 평가는 숫자로 요약됐다. 이런 구조에서 금융기업가정신이 자라기 어렵다는 점이 지금 문제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지배구조가 거론되는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은 목적이 아니다. AI 시대 국가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으로 바뀌기 위한 수단이다. 이 점을 놓치면 논쟁은 곧장 엇나간다.
해외 사례는 방향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AI와 데이터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도, 이사회를 ‘모험을 막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리스크를 설계하는 장치’로 활용해 왔다. 어떤 리스크는 허용하고, 어떤 리스크는 넘지 말아야 하는지를 사전에 합의한다. 싱가포르의 금융기관들은 CEO 평가에서 단기 실적보다 디지털 전환과 조직 학습 성과를 중시한다. 스페인의 한 글로벌 은행은 혁신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보다, 그 과정에서 어떤 판단이 이뤄졌는지를 이사회에 남긴다. 혁신을 개인의 용기에 맡기지 않고, 구조 속에 담아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 혁신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최선의 방법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 금융에서 올바른 일을 고르는 능력이 바로 판단이다.
 
최근 논의에서 한쪽은 “능력 있는 지주회장까지 흔들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기득권화된 이너서클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 다 일리가 있다. 성과를 낸 CEO는 평가받아야 한다. 성과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흔드는 구조는 금융 리더십을 위축시키고, 판단을 회피하게 만든다. AI 시대 금융기업가정신은 모험적 결단을 요구하지만, 그 결단은 “잘하면 지켜준다”는 신호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성과만으로 보호받는 구조도 위험하다. 금융에서 성과는 단일한 숫자가 아니다. 단기 실적이 미래 리스크를 가린 결과일 수도 있고, 과거의 성공 경험이 기술 전환기에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한 격언처럼 “배가 가라앉는 것은 파도 때문이 아니라, 물이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지금의 성과가 잠복된 리스크 위에 쌓인 것이라면, 그 역시 평가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래서 핵심은 연임이냐 교체냐의 문제가 아니다. 판단의 질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다. 어떤 리스크를 알고 감수했는지, 그 판단은 이사회에서 어떻게 검증됐는지, 반대 의견은 기록됐는지, 실패했을 경우의 대응 시나리오는 있었는지. 금융에서 성과 평가는 숫자가 아니라 판단의 기록으로 이뤄져야 한다.
 
금융당국의 역할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특정 인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가르는 기준과 책임 구조를 세우는 것이다. 외부 개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자율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율이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한 한시적 장치여야 한다. 기준이 분명해질수록, 잘하는 리더는 보호되고 못하는 리더는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지배구조 개편은 결국 금융의 역할을 다시 묻는 문제다. 관리 중심의 금융으로는 AI 시대 국가 성장을 뒷받침할 수 없다. 기술과 산업을 읽고,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며, 그 판단에 책임지는 금융이 필요하다. 그 핵심에 금융기업가정신이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AI 시대 국가 성장도 다르지 않다. 금융이 관리에 머물지 않고 판단의 역할을 회복할 때, 국가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금감원의 이번 지배구조 점검이 그 출발점이 될지, 또 하나의 관리 강화로 끝날지는 지금 이 논의를 어떻게 확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픽노트북LM[그래픽=노트북LM]
 
앙트레프레뉴어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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