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 전기차 공장 생산라인에서 직원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DB]
중국 인공지능(AI) 산업이 촉발한 메모리칩 공급난에 구리·은·희토류 등 비철금속과 배터리 가격 급등까지 겹치면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본격적인 공급망 비용 방어전에 나섰다.
특히 스마트화·전동화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차량용 메모리칩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진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중국 증권시보는 14일 보도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리오토의 멍칭펑 공급망 담당 부사장은 “올해 AI 산업의 반도체 흡수 현상이 심화되면서 차량용 메모리칩 공급이 위기를 맞고 있다”며 “반도체 공급 충족률이 50%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전기차 업체 니오의 리빈 창업자 역시 “메모리칩 가격 상승이 올해 가장 큰 비용 압박 요인”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중국정보통신기술연구원(CAICT)에 따르면 최신 스마트 전기차에 사용되는 메모리칩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고급 차량 모델 한 대에 필요한 메모리 용량은 이미 64GB~256GB 수준에 이르렀으며, 앞으로는 테라바이트(TB·1TB=1000GB)급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한 국유 자동차업체 임원은 “테라바이트급 메모리칩 시대가 도래하면 차량 하드웨어 전체 비용에서 메모리칩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 2030년에는 15%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도 자동차 제조 원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구리, 은, 알루미늄, 희토류 영구자석 등 주요 비철금속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비용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 전력 시스템, 배선 하니스 등에서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많은 구리를 사용하는 만큼, 원자재 가격 상승이 제조 원가 인상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속 가격 상승은 다시 배터리 소재와 부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비용 압박을 증폭시키고 있다.
고급 D램 70%가 AI로…車·스마트폰은 ‘뒷순위’
증권시보는 이러한 비용 상승 배경으로 자동차 산업과 AI,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흥 산업 간 자원 쟁탈전을 지목했다.
메모리칩의 경우 글로벌 고급 D램 생산 능력의 상당 부분이 이미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용으로 배정돼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7년까지 전체 D램 생산량의 70%가 AI 분야로 흡수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본력과 수익성이 월등한 AI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자동차나 스마트폰 등 전통 산업 업체들은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메모리칩 부족에 일부 완성차 제조업체의 구매 담당자들은 더 많은 주문량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직접 방문하는가 하면, 중국 국산 칩도 시범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원자재 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태양광, 반도체, 로봇, ESS 산업 등이 구리 등 희소금속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면서 자동차 산업에 배정되는 물량이 점차 압박받고 있다. 여기에 리튬 가격 상승으로 전기차 배터리 가격 인상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공급 확보를 위해 배터리 제조업체들과 직접 접촉하며 계약을 서두르는 등 공급망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중국 전기차 브랜드 샤오펑의 허샤오펑 최고경영자(CEO)가 “배터리 제조업체 대표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고 언급할 정도로, 최고경영진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3~5년 이어질 공급망 비용 압박…체력전 돌입
증권시보는 “현재 상당수 업체가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해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전가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흡수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3~5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고 짚었다.
한 주요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대규모 차량 인도 지연 가능성은 낮지만, 일부 모델의 사양 조정이나 출고 지연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비용 상승세가 자동차 산업 재편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업체 관계자는 “기술력과 공급망 관리 역량을 갖춘 선두 업체들은 장기 계약과 조달 다변화를 통해 충격을 완화하겠지만, 중소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불안정한 공급으로 시장 점유율을 더 잃고 신차 인도 지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주경제=베이징=배인선 특파원 baeinsun@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