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병오년 새해를 맞아 세계 경제와 글로벌 통상을 전망해 보고 있었다. 올해 CES 주제는 무엇이고, 또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어떤 내용의 논의가 오고 갈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세계 주요 국제경제기관의 경제 전망도 검토하고, 저명한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McKinsey)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의 올해 전망도 읽어보았다. 여기에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스, 이코노미스트와 같은 세계 주요 경제 전문지의 올해 경제 전망도 추가하였다. 한편, WTO의 제14차 각료회의(MC14)가 3월에 열린다니 영양가는 없더라도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는 살펴보았다. 그리곤 올해 예정된 주요 국제 정치․경제 행사도 찾아보았다. 4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갈등 속에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 외 G7 정상회의나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가 있으나 모두 연례행사 수준이고, 아무래도 11월의 미 중간선거가 세계 경제나 통상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였다.
이와 같은 점을 나름 정리하면서 과연 올해 세계 경제와 국제통상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를 전망하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축출 소식이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오보인가 귀를 의심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을 체포해 자기 나라 법정에 세운다는 정말이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순간 세계 경제와 통상의 전개 방향을 가늠해 보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됐다. 전망을 위해 하나씩 둘씩 쌓아 올린 근거와 추론은 일시에 무너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도대체 국제법은 존재하기라도 하는 건가? 한 나라의 주권 존중과 영토보전이란 가장 기본적인 국제 사회의 약속이 무너졌는데 세계 경제와 통상을 전망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음을 다잡고 생각해 보니 돌연 재작년 이맘때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모인 세계 주요국의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농담으로 말했던 내용이 머리를 스쳤다. 2024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신뢰 재구축’으로 세계적인 분열과 위기 속에서 신뢰 회복과 협력의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곤 당시 세계가 직면한 3대 위협으로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뉴스, 사회적․정치적 극한 대립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참석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이슈는 그해 1월 끝난 미국 공화당 당원대회 결과였다.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51%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다보스에 모인 전문가들은 우스갯소리로 세계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은 아마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의미심장한 그리고 냉철한 예측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그보다 훨씬 오래된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당시 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기억도 또 올랐다. 당시 세계 경제의 가장 큰 화두의 하나는 중국의 WTO 가입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많은 석학과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거대 중국의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회의 도중 점심시간에 한 전문가가 중국을 지능이 낮은 거인으로 비유하는 농담을 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TV에 나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에서 왜 그때 그 농담이 떠오른 것일까?
지난 주말 트럼프 대통령의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는 화룡정점이다. 세계 무대에서 당신의 권력을 견제할 만한 것이 있느냐는 기자의 날선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생각 (도덕성)뿐이라고 답변하였다. 그에 더하여 자신은 국제법이 필요하지 않다고 발언하면서 그린란드에 대해 미국의 단순 주둔이 아닌 법적 소유권 취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껄끄러워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임을 모를 리 없을 텐데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본인의 의중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일까? 그 속을 알 수는 없지만 해당 인터뷰 내용을 읽고 나면 전 세계가 미국 대통령의 발아래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경제나 글로벌 통상에 대한 전망은 별 의미가 없다. 전망의 근거 자체가 불확실해 전망에 따른 오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 전망을 하나 하지 않나 큰 차이가 없으니 전망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남은 것은 ‘법치 몰락의 시대’에 살아남기인데 이 역시 특별한 방법이 없다. 그저 모든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밖에. 그러니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하나에 주력하기보다 여러 나라와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영양가 없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깊은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한마디, 18세기 이후 절대왕정에 대응해 상인의 권익과 개인의 자유 신장에 기여해 왔던, 그래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서양을 지배해 왔던 사회경제의 근본이념인 법치주의가 몰락하고 있다는 말은 감히 해야겠다. 그래서 단순히 불확실성의 심화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시대의 정신이 변하고 있으며, 여기에 인공지능과 가상화폐가 더해져 새로운 대변혁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이 어쩜 희망의 불씨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아주경제=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