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래정정(往來井井)’.
주역(周易)의 정괘 괘사에서 유래한 이 사자성어는 ‘마을을 고치되 우물은 바꾸지 않으며 오고 감에 질서가 있다’는 뜻입니다. ‘정 개읍불개정 무상무득 왕래정정(井 改邑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이라는 문장에서 따왔습니다. 모두 함께 쓰는 우물을 중심으로 도시의 활기 넘치는 성장과 발전을 표현한 것입니다. 과거 도시가 모두 함께 쓰는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를 반영한 표현이죠.
이재준 수원시장이 6일 일월수목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수원 대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6일 일월수목원에서 열린 신년 간담회에서 “더 많은 시민을 만나고, 더 많은 목소리를 들으며 시민과 함께 새로운 수원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주권 도시’의 모든 정책은 시민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수원 대전환으로 새로운 수원을 완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모두 잘 사는 도시’…첨단과학연구도시·K축제 병행 숨은 뜻
이 시장은 이날 왕래정정으로 화두를 던졌습니다. ‘우물, 마을을 고치되 우물은 바꾸지 않는다.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 오고 감에 질서가 있다’는 뜻을 확장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로 생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말도 있습니다.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순회 간담회를 열지만 대부분 시나리오가 준비된 ‘약속된’ 대련의 형태다. 저도 1~2년 차에는 그랬는데, 올해는 다 열어놓고 무작위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역량은 이미 올라왔고, 의식도 성숙했다는 판단이었는데 무지막지한 이야기가 없었다. 생활불편부터 정책 제안, 더 나아가 국가적 담론까지 들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원시청 실제로 이 시장은 지난해 9월부터 88일간 관내 44개 동에서 ‘새빛만남’으로 불리는 소통 간담회를 이어왔습니다. 시민 목소리를 듣고 486건의 민원 중 현재 88%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동장은 물론 과장·국장까지 매달려 민원을 살펴봤다고 했습니다. 100일간 진행된 시민 민원함 ‘폭싹 담았수다!’ 역시 눈에 띕니다. 이달 중순에는 시민 민원함 전담팀인 ‘시민소리해결팀’이 출범하고, 민원함 운영이 상하반기로 나뉘어 100일씩 이어집니다.
이날 이 시장은 미래 수원의 청사진으로 △첨단과학연구 중심도시 △세계 문화관광 도시 △시민이 체감하는 더 살기 좋은 도시를 제안했습니다. 시장 선출에 앞선 4년간의 부시장 재직 시절을 떠올리며 ‘첨단과학연구도시’와 ‘K축제’ 추진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도 설명했죠.
“모두가 잘 사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안에서 수원이 어떤 역할을 할지, 또 무엇을 강화해야할지 고민했다. 첨단과학연구도시로 만들면 고급인력은 몰리겠지만 골목경제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일부 ‘낙수효과’는 있지만 소시민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많은 방문객이 수원을 찾아야 소상공인도 산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불러온 이른바 ‘케데헌 시대’에 수많은 관광객을 서울에만 가둬놓지 말고 ‘축제 공연문화의 도시’ 수원을 찾도록 해야 한다. 수원에는 수원화성과 정조대왕 능행차 등 관광자원이 넘친다. 카니발의 도시인 브라질 리우나 옥토버페스트의 도시 독일 뮌헨을 벤치마킹하겠다. 숙소와 식당이 관광객들로 붐비는 K축제를 활성화해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도움이 필요한 시민에게는 생활비, 무상교통 등 다양한 새빛정책의 혜택이 닿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 ”
이재준 수원시장이 6일 일월수목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 수원 군 공항 이전지에 3조원 투자…경제자유구역에 ‘리딩그룹’ 유치 수원 경제자유구역은 이날도 화두였습니다. “오는 11월 산업통상부의 최종 지정을 받을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면서 “권선구 서수원 일원 3.24㎢ 부지에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과학연구의 기능을 집적해 수원을 첨단과학연구의 중심이자 글로벌 첨단 연구·개발(R&D) 허브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수원 경제자유구역이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동력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는 수원에서, 제조는 지방에서’라는 말처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지방 제조업이 활성화되고 전국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죠.
이재준 수원시장이 새빛하우스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이 시장은 수원화성 축성 230주년인 올해를 ‘2026 수원 방문의 해’로 정하고 화성문화제와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 미디어아트 등 ‘수원화성 축제’를 2035년까지 연간 방문객 500만명의 세계 3대 축제로 육성한다는 목표도 내놨습니다. 닷새간 700만명의 발길을 끄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3조3000억원 파급 효과)과 2주간 600만명이 방문하는 독일의 ‘뮌헨 옥토버페스트’(2조원 파급 효과)가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이를 위해 수원화성문화제를 ‘K축제’로 공식 지정하고 국비 100억원을 투자하도록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이 시장은 민선 8기 대표정책인 ‘새빛 시리즈’ 확대도 예고했죠. “시민의 생활비 부담을 덜기 위해 올해부터 ‘수원 새빛 생활비 패키지 사업’을 시행한다”며 “출산 가정, 청소년, 청년, 어르신까지 모든 계층이 고르게 혜택을 받도록 꼼꼼하게 새빛 생활비 패키지를 설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더 자주 현장에 나가 시민의 마음을 듣고, 시민 피부에 와 닿는 지속가능한 정책을 계속해 발굴하겠다. 시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선 기업유치와 군 공항 이전, 특례시 권한 이양, 새빛민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 시장은 이재명 정부와의 관계를 강조했죠. 그러면서 “‘수원의 이재명’으로 불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6일 일월수목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수원 대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다음은 일문일답입니다. ―경제자유구역에 유치하고 싶은, 욕심 나는 기업이 있다면.
“과거 서울의 마곡 신도시 총괄기획자로 중간 과정부터 서울시와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이른바 ‘리딩그룹’이 들어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LG가 입주를 결정한 이후 남은 토지들의 분양이 곧바로 마감됐다. 이런 여러 경험이 통합적으로 작용해 수원 경제자유구역 성공은 어떤 리딩그룹이 들어오느냐에 달렸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는 어떤 외국인 학교가 들어오느냐, 세 번째는 양질의 외국인 투자그룹 유치이다. 현재 욕심이 나는 반도체 AI 기업이 있는데 어떤 기업이라고 얘기할 순 없는 상태다. ”
―수원 군 공항 이전 진행 상황은.
“2013년 대구·광주의 국회의원들 뭉쳐 특별법을 만들었고, 지금 대구·광주는 군 공항 이전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수원도) 좋은 결과가 있겠지만 함부로 말하기는 힘들다. 경험상 애초 이 문제는 수원시나 경기도 혼자 갈등 조정의 주체로 나서기 어려웠다. 중앙정부에 돌려야 했는데, 다행히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허심탄회하게 국방장관께 건의해 장관께서 현장을 보겠다고 했다. 언제 물살을 탈지는 아무도 예측 못 한다. 다만, 새 정부는 강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
이재준 수원시장 지역 육교를 방문해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군 공항 이전 후 서수원 부지 개발은. “군 공항 이전에서 지자체 간 갈등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는 민원이 아니라 국가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도심 군 공항이 과연 옳으냐고 설득할 것이다. 이건 국가사업이다. 광주와 대구는 종전부지 개발 이익이 크지 않아 국가 보조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광주시가 무안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이유다. 반면 수원은 개발이익금이 커 국가 지원을 받을 이유가 없다. 수치적으로 3조원 이상의 돈을 이전 예정지에 줄 수 있다. ”
―이재명 정부의 특례시 권한 이양은.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을 두 차례 하시고 도지사도 지내셨다. 취임하자마자 지자체가 아닌 지방정부라고 표현하자고 하셨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사실 (정책은) 대통령 혼자 하시는 게 아니라 위임받은 사람들이 대통령만큼 절절한 마음과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방에서 경험한 언론인, 시민단체, 정치인들이 합심해 논제를 파고들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지방자치와 분권이다. 우리에게는 왕정에서 시민의 시대로 넘어온 100년 가까운 시간이 있다. 유럽은 200년이다. ‘시민의 시대’는 2개 시스템이 상존한다. 중앙집권적이냐 지방분권적이냐이다. 우리는 전자다. 유럽은 그 시대를 넘어 지방 분권으로 넘어갔다. 로드맵은 나오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언론,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과정을 지혜롭게 풀어가겠다. ”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