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밀실에 들이댄 카메라 …활짝 열린 국정의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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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칼럼] 밀실에 들이댄 카메라 …활짝 열린 국정의 주방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드라마가 유희와 신체적 모방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그것이 처음부터 교훈을 전달하기보다는 감정을 함께 경험하도록 만드는 장치였음을 시사한다. 사람들은 드라마 속 인물의 두려움과 고통, 갈등과 선택을 직접 겪지 않고도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며 감정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현실에서 풀리지 않던 감정은 정리되고, 마음속에 쌓였던 답답함은 누그러진다. 오늘날 드라마나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눈물을 쏟고 가벼워지는 데 있지 않다. ‘변호인’이나 ‘부당거래’와 같은 영화를 보고 관객이 느끼는 것은 자신이 느껴온 분노와 불편함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다. 국정 업무보고 TV 생중계를 보며 국민들이 웃거나 화를 내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 역시 이러한 감정의 정렬, 곧 카타르시스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작년 말에 TV로 생중계된 국정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무능한 공무원을 질책하고 유능한 공무원을 칭찬하는 장면이 국민들에게 드라마와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칭찬과 질책이 한 장면 안에서 또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치인들의 정치 놀음을 보고 있자면, 왜 개그 프로그램이 망했는지 알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심지어 ‘잼플렉스’의 ‘잼’이 재미의 잼이 아니라 재명의 잼이라는 농담까지 회자된다. 정치가 풍자가 되고, 현실이 드라마가 되는,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잼재명’이라는 기대가 생겨난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공개석상에서 질책과 칭찬을 분명히 하려는 태도는 기존 정치의 일상적 풍경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상 첫 국정 업무보고 TV 생중계’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대통령실은 이를 ‘국민의 알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전례 없는 실험’이라고 말하지만, 야당인 국민의힘은 ‘보여주기식 정치 쇼’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같은 장면을 두고 한쪽은 투명성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연출을 말한다. 이 충돌은 단순한 여야 공방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야당의 비판은 구체적이다. 취임 초기부터 이어진 기자회견과 국정 업무보고 생중계가 실질적 성과보다 이미지와 연출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생중계 도중 산하기관장을 공개적으로 질타한 장면을 두고는, 국정감사보다 더한 압박이자 공직사회에 대한 과도한 공개적 질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공개성과 투명성이라는 이름 아래 공무원 조직 전체가 카메라 앞에 세워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쟁을 단순히 정치적 유불리나 호불호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지금 생중계인가? 왜 지금 공개인가? 왜 지금 권력은 설명을 요구받는가? 정치는 오랫동안 닫힌 공간에서 작동해 왔다. 과거, ‘밀실 정치’, ‘요정 정치’라는 말이 상징하듯, 중요한 결정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졌다. 국민은 결과만 전달받았고, 과정은 설명되지 않았다. 그것이 비정상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구조를 흔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를 만든 것은 정치의 각성이 아니라 기술의 진보이다. 인터넷, 실시간 중계, 플랫폼, 데이터 공개는 권력의 문을 안에서 열도록 설득하지 않았다. 밖에서 밀어 열어버렸다.
 
IT는 민주주의를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숨을 곳과 숨길 곳을 찾아 없앤다. 카메라를 켤 수 있는 시대, 기록이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환경 속에서 국정은 더 이상 닫힌 문 뒤에서만 운영되기 어렵다. 국정 업무보고 생중계는 그래서 정치적 선택이면서 동시에 시대적 귀결이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은 가능하다. 동시에, 보여주지 않을 수 없는 시대라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지금의 공개는 선의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IT는 중식당 주방의 투명유리이다. 설명하지 않는 권력은 곧바로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재명 국정 보고 생중계를 보며 정치가 ‘고구마’가 아니라 ‘사이다’처럼 느껴졌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이 빠르다고, 톤이 강하다고 해서 시원한 것은 아니다. 시원함은 말과 책임이 맞물릴 때 생긴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도 시원하다고 느끼는 한국인들이, TV로 생중계되는 국정 업무보고에서 정치적 ‘시원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화면에는 안타까운 장면들이 비춰진다. 국정 업무보고에서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변화의 방향을 읽지 못한 채 자리에 연연하며,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명시적 반대도 아니고, 책임 있는 결단도 아니다. 그저 시간을 끌고, 업무 파악을 핑계로 미적거리며, 자리가 자신의 것인 양 머무는 태도이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분노보다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다. 자리는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다. 자신이 더 이상 새 질서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나지 않는 것은 안정이 아니라 정체이다. 정체는 곧 비용이고, 그 비용은 국민의 혈세로 지불된다. 떠오르는 한 구절이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리에 오르는 기술보다, 자리를 내려오는 품격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권력은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국정은 개인의 무대가 되고, 제도는 장식으로 전락한다. 낙화의 미덕은 떠남에 있다. 떠날 줄 모르는 권력은 결국 추해지는 법이다.
 
연초부터 웬 ‘짬뽕 타령’인가 싶겠지만, 짜장면과 짬뽕이 먹고 싶어 중식당 골목에 들어섰다고 해보자. 어느 식당은 주방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 곳은 주방을 개방해 투명한 유리 너머로 조리 과정과 주방장의 손놀림이 그대로 드러난다. 열에 아홉은 주방이 열린 식당을 고를 것이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오늘의 국민은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본다. 도산 안창호는 물었다. “그대는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이 질문은 개인의 삶을 넘어 공동체와 권력을 바라보는 기준을 제시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정을 지켜보는 시청자이자, 세금을 내고 투표하는 시민이 주인이다. 대통령과 공무원은 그 자리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국정 설명회와 생중계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주인은 설명을 요구하지만, 나그네는 설명을 번거로워한다. 공개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일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주인으로 착각할 때 생기는 심리적 저항 때문이다. 국정 생중계는 정치적 이벤트이기 이전에 태도의 문제이다. 국민 앞에서 설명한다는 것은 자신이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권력은 언제나 설명해야 하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리고 이 질서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정치의 선의가 아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시대, 숨길 곳이 없는 시대에 설명하지 않는 권력은 무능을 넘어 비정상이 된다.
 
야당은 국정 보고 생중계를 두고 이미지와 포장에 치중한 ‘정치 쇼’라고 말한다. 심지어 공개 질타를 ‘직장 내 괴롭힘’에 비유하며 공직사회를 압박하는 장면이라고까지 주장한다. 비판은 가능하다. 권력은 언제나 의심받아야 하고, 공개는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 자체가 곧바로 부정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장년 세대라면 흑백 TV 화면 속, 한 장면을 떠올릴 법하다. 한 배우가 어린 아들과 함께 등장했던 어린이 영양제 광고이다. 그 광고에 남은 한 문장은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 말에는 완벽을 요구하는 조급함도, 얌전함을 강요하는 훈계도 없었다. 다만 아이가 제 힘으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잘 자라기보다, 제대로 자라기를 바랐던 한 부모의 기대였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코스프레’라도 좋다. 가식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정치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성숙한 적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연출의 순도보다, 생태계의 건강이다. 닫힌 문을 열고, 질문을 받고, 설명하려는 시도를 통해 정치가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는가의 문제이다. 공개의 형식이 서툴 수는 있다. 말이 거칠 수는 있다. 그러나 뭔가 해보려는 시도 자체를 조롱으로만 치부해 버리면, 정치는 다시 닫힌 어두운 방으로 후퇴한다. 그래서 필자는 국정 업무보고 생중계가 ‘코스프레’라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해보기나 해봤냐고. 한 번이라도 해볼 생각은 해봤느냐고.’
 
투명한 유리 주방 안에서 국정과 민원의 재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조리되는지, 그 과정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정치. 요리의 완성도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다만 오늘의 국민은, 최소한 주방의 문이 열려 있는 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잼재명’이라는 기대가 공허한 별명으로 남지 않으려면, 국정의 주방은 끝까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아주경제=서정목 대구카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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