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당신에게 골목의 오후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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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당신에게 골목의 오후를 드리겠습니다
이대흠
당신의 추억은 모서리에 빛을 담고 있나요? 구리선을 휘듯이 당신 생의 가장 힘든 골목을 구부려본 적이 있나요? 시간을 구부려 꽃을 만들어본 사람은 슬픔으로 케이크를 만들 수도 있답니다 그런 당신에게는 골목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혼자 버려져 있어도 늘 온기를 품고 있는 골목입니다 농협이 있는 큰길에서 한참을 벗어난 곳입니다 굄돌을 감싼 채송화꽃이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마구 터집니다 오래전에 버려진 깡통도 녹을 품은 채로 평화롭습니다 아이스크림 껍질에도 햇살은 번집니다 노랑 의자 하나 구부러진 담장 옆에 있습니다

당신이 견딜 수 없는 그 무언가로 괴로워할 때 이 골목을 드리겠습니다 지친 당신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 이 골목의 오후를 드리겠습니다 어떤 비통이나 어떤 슬픔 사이에 책갈피 꽂듯 이 골목을 꽂아두세요 (하략)
소박하면서도 깊다. “당신에게 골목의 오후를 드리겠습니다” 하는 말에 깃든 마음이란. 햇살이 번지는 작은 골목을 주겠다니. “생의 가장 힘든 골목을 구부려본 적” 있는 사람에게. 슬픔의 시간을 견뎌 지금에 이른 사람에게. 그가 다시금 어떤 슬픔을 맞닥뜨릴 때 골목이 품고 있는 끈질긴 온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1월 도시의 골목은 지나치게 차다. 그렇지만 골목은 여전히 골목이다.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싼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걷는다. 식당으로 카페로 편의점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택배 트럭과 배달 오토바이가 바삐 움직인다. 상점에서 새어 나오는 노래, 놀이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견딜 수 없는 일로 괴로울 때면 나는 일부러 골목 구석구석을 쏘다닌다. 싱싱한 소요 속에 “책갈피 꽂듯” 나를 잠시 꽂아두고 싶어서. 시를 읽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이 골목 또한 누군가 내게 준 선물일까 하고.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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