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밖의 안성기를 기억한다. 어쩌면 그의 진면목이었을지 모를.
기자 초년병 시절이었다. 세종로 야외에서 스크린쿼터 집회가 한창이던 날이다.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한 현장의 분위기는 날이 서 있었다. 그곳에 모인 취재진도 분주했다.
현장 취재를 하던 나는 전경 사진을 찍기 위해, 배우들이 도열한 무대위로 덜컥 올라갔다. 신입 기자 특유의 조급함으로 목표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던 시기였다. 시야의 양옆은 막혀 있었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나 외에 여러 기자가 무대위에서 전경을 담기 위해 동분서주, 우왕좌왕했다. 변변치 못햇던 나는 가장 늦게 단상아래 내려가게 됐는데, 순간 머뭇거리게 됐다.
무대가 생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대 뒤쪽 사다리까지 가기엔 여유가 없었다.
그때였다. 망설이는 내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단상아래 서 있던 양복차림의 중년 남자. 그는 영화배우 안성기였다.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도움의 손길과 함께 평온한 눈빛, 그리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안성기’하면 떠오르는 그 표정, 맞다.
말은 없었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안성기는 그저 손을 내밀고, 내가 내려올 수 있게 도왔다. 그날 나는 대배우의 손길에 의지해 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흔들리는 배에서 하선할때 붙잡는 동앗줄 같았다.
누군가는 “그게 뭐 대수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은 집회현장의 날카로움과, 그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초보기자의 부담감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꽤 지쳐있었다.
그때 잡게 된 안성기의 따뜻했던 손은 깊은 안정감을 전했다.
5일 새벽, 안성기는 74세로 영면에 들었다. 그를 애도하는 무수한 기사와 그가 출연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안성기 배우의 연기에 대해선 내가 언급할 깜냥이 안 된다.
물론 국민배우라는 위상과 달리, 화려하지 않다거나 딕션이 또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의 연기를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한국 영화의 중심에서 뿌리를 내리고, 다작 속에서 현장을 지키며, 후배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존재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같은 실수투성이의, 무수히 많은 손을 잡아주었을것 같은 배려를 떠올리게 된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안절부절하던 제 손을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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