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여 동안 이어진 이란 반정부 시위의 사망자가 최소 10명에 이른 가운데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강경 진압을 시사해 대규모 사상자 발생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상자 발생을 빌미로 개입 가능성까지 언급해 위기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국 ABC방송 등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이날 이란 국영 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시위대와 대화해야 하지만, 폭도들과 대화하는 것은 이득이 없다”며 “폭도들은 그들의 자리에 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통화가치 하락과 불안정한 환율에 대한 상인들의 항의는 정당하다”면서도 적에게 선동되거나 고용된 사람들이 상인들의 배후에서 시위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반정부 시위가 본격적으로 촉발된 이후 하메네이가 공개 언급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대강’ 대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3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날 이란 국영 방송에 출연해 경제난으로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폭도들과 대화하는 것은 이득이 없다”며 강경 진압을 시사했다. 테헤란=EPA연합뉴스 이번 반정부 시위는 수도 테헤란 상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돼 대학가가 동조하며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이란 22개주 100여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급격한 환율 하락과 물가 급등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지만, 이후 ‘독재자에게 죽음을’ 등의 정치구호까지 등장하는 등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로 변화한 상황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팔레비가 돌아올 것’이라며 호메이니가 이끄는 신정체제가 붕괴하고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가 귀환해야 한다고 외치는 구호도 나오고 있다. AP통신은 이 과정에서 시위의 폭력 수위가 시시각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시아파의 성지인 중부 곰에서는 수류탄이 폭발해 남성 1명이 사망했고, 하르신에서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연계 준군사조직인 바시즈민병대 대원 1명이 흉기와 총기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현지 매체들은 지금까지 시위 과정에서 사망한 시민이 최소 10명에 이른다고 전했지만, AP통신 등 해외 언론들은 사상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이란 남부 파사 지역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지방정부 청사에 돌을 던지는 모습. 테헤란=AFP연합뉴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이런 상황에서 하메네이의 강경 진압 시사 발언이 나오며 향후 정부와 시위대의 충돌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 당국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이란의 적들이 이번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며 이란 전역에 혼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며 시위대를 사실상 ‘반정부 세력’으로까지 규정 중이다. 과거 반정부 시위 때도 이란 당국은 시위가 격화되거나 장기화하면 시위대를 ‘폭도’로 지칭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고, 이때마다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왔었다. 2019년 11월 연료 가격 50% 이상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 사망자는 이란 정부의 비공식 집계로 1500여명에 달한다. 2022년 20대 여성 마흐사 아마니가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의문사한 뒤 시작된 ‘히잡 시위’ 역시 사망자가 400명을 넘는다는 인권단체의 추정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개입 가능성까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늘 그랬듯 평화 시위대에 발포해 폭력적으로 살해할 경우 미국은 그들을 구출하러 나설 것”이라며 “우리는 완전히 준비된 상태이며 출동할 준비가 됐다”고 적었다. 이에 이란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정에 간섭하면 지역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미국의 이익을 파괴할 것”이라고 반발해 이번 반정부 시위가 이란과 미국의 충돌로까지 발전할 여지가 생겼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