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의회, 낮은 지지율 등으로 사면초가에 놓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임기 단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 당장 물러나야 한다’는 야권의 압박을 일축한 것이다. 마크롱의 대통령 임기는 오는 2027년 5월까지로 약 1년 5개월 남았다.
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마크롱은 2025년의 마지막 날인 전날(12월 31일) 연례 대국민 연설을 했다. 텔레비전(TV)으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마크롱은 “저는 여러분이 제게 맡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으며 임기 만료 전 마지막 1초까지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 신당 후보로 임기 5년의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은 2022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대통령의 3연임을 금지한 프랑스 헌법에 따라 오는 2027년 5월에는 물러나야 한다.
지난 12월 31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례 대국민 연설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 등 서방 주요국들은 요즘 러시아 정보 당국의 자국 선거 개입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 요원들이 서방 국가들의 선거에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이나 온라인 기사에 붙은 댓글 등을 통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마크롱도 이 점을 의식한 듯 “외국의 간섭 없이 대통령 선거가 최대한 차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서 ‘외국’이란 러시아를 에둘러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마크롱 앞에 놓인 최대 난제는 예산안 확정이다. 마크롱의 핵심 측근인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제출한 2026년도 예산안은 아직도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새해 벽두를 앞두고 임시 법안을 가결해 가까스로 정부 ‘셧다운’(일부 기능 정지)을 막았다. 유럽연합(EU) 역내 2위의 경제 대국이 아직 올해 예산조차 편성하지 못한 상황은 EU 중에서도 단일 화폐 유로화(貨)를 쓰는 이른바 ‘유로존’ 국가들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난 12월 31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TV로 지켜보던 어느 시민이 술잔을 들어올리고 있다. 마치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놓인 마크롱을 위한 건배 제의처럼 보인다. EPA연합뉴스 프랑스는 그간 방만한 나라 살림으로 재정 적자가 폭증하자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긴축 예산안을 마련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국민의 복지 혜택 축소를 수반한다. 그러자 야당은 물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연설에서 마크롱은 의회를 향해 “조속한 예산 확정이 필수적”이라며 정부 예산안 통과를 호소했다. 하지만 여소야대 의회가 마크롱의 간청을 쉽게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프랑스는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함과 동시에 주요 정당들 중 아무도 단독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 결국 의회 과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소수당 정부가 위태위태하게 존립하며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 마크롱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2025년 연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마크롱의 지지율은 25%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7년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에 해당한다. 이에 야권에선 ‘마크롱이 임기 완주를 포기하고 퇴진함으로써 조기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