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일자리를 외치기 전에,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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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일자리를 외치기 전에,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일자리’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 왔다. 고용은 민생이고, 민생은 국가의 존립 기반이라는 인식에서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정책의 성패는 구호가 아니라 접근법에서 갈린다. 일자리는 목표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출발점은 언제나 일거리다.

일자리는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예산을 투입해 숫자를 맞춘다고 지속 가능한 고용이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누군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사업으로 만들고, 시장에서 확장할 때 비로소 일거리가 생긴다. 그리고 그 일거리가 커질 때 일자리가 따라온다. 이 단순한 상식이 정책 담론 속에서는 자주 거꾸로 뒤집힌다.

냉정하게 말해보자.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공무원은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내는 집단이 아니다. 이들의 역할은 제도와 규칙, 환경을 설계하는 데 있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발견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창업가와 기업인이 뛰지 않으면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고용은 행정이 아니라 사업에서 나온다.

해외 사례는 분명하다. 오늘날 수천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주체는 미국 연방정부가 아니다. 차고에서 시작한 창업가들, 실패를 반복하며 다시 도전한 기업인들이었다. 실리콘밸리를 탄생시킨 것도 정부의 ‘고용계획’이 아니라,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모험자본, 그리고 규제보다 혁신을 우선한 제도 환경이었다. 정부는 직접 고용주가 되기보다 심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규칙은 명확하되, 경기장 안에서 뛰는 선수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유럽 역시 다르지 않다. 독일의 강소기업, 이른바 ‘히든 챔피언’들은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생겨난 기업이 아니다. 지역에 뿌리를 둔 기술 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숙련 인력을 키우며 세계 시장을 개척한 결과다. 국가는 노사관계의 안정, 직업교육 시스템, 예측 가능한 규제를 통해 기업이 마음 놓고 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정부는 일자리를 ‘대신’ 만들지 않았고, 일거리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성공한 나라일수록 일자리를 직접 설계하지 않았다. 대신 창업가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했고, 기업인이 투자 결정을 할 때 정치적 리스크보다 시장의 논리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서구의 오래된 격언처럼, “고용은 명령으로 생기지 않고, 신뢰에서 자란다. ”

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업을 잠재적 범법자처럼 대하는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창업가는 실패하면 무능의 상징이 되고, 기업인은 성공하면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장기 투자를 결심하고, 누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겠는가. 규제는 필요하다. 공정과 정의는 양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도전을 억누르는 명분이 되는 순간, 일자리는 행정 통계 속 숫자로 전락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려면 고용 숫자부터 묻기 전에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새로운 일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더 본질적으로는 **“창업가와 기업인이 마음 놓고 뛰고 있는가.”**다.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원인을 바꿔야 한다. 원인은 명확하다. 일거리를 만드는 사람들, 즉 창업가와 기업인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다.

진리와 정의, 자유를 말하는 언론이라면 이 상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인간과 문화, 자연을 사랑하는 사회라면 지속 가능한 기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일자리를 외치기 전에, 우리는 다시 일거리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정도(正道)다.
 사진아주경제 DB[사진=아주경제 DB]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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