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광장] 탄력 받은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 논의, 문화정책의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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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광장] 탄력 받은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 논의, 문화정책의 시험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최고의 핫플레이스를 꼽자면 국립중앙박물관을 빼놓기 어렵다. 주말이면 입장하려는 대기 줄이 수십미터에 이를 정도로 붐비며 오전 입장을 위해서는 오픈런이 일상화됐다. 전시실은 남녀노소 다양한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기념품 뮷즈는 없어서 못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품귀현상까지 벌어진다.

문화유산을 품은 국립박물관이 이례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올해 처음으로 600만 관람객을 넘기며 세계 4위권에 진입했다. 열풍과 동시에 유료화 논의도 불붙었다. 600만 관람객 시대를 맞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입장료 무료 정책이 크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올해 국중박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3만여명이다. 전시동의 규모나 관람 환경 등을 감안해 정해진 설계상 최대 수용인원 1만8000여명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전시장이 관람객으로 지나치게 붐비면 동선은 혼잡해지고 진지한 문화 향유는 어려워진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아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유료화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다행히 유료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어느 정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 반대 여론이 있긴 하지만 유홍준 박물관장이 유료화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찬성 목소리가 크다. 공공시설 유료화에 일반적으로 여론이 부정적인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최근 업무보고에서 “무료로 하면 격이 떨어져 싸게 느껴지기 때문에 귀하게 느낄 필요도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해 유료화에 힘을 실었다. 일부 반대 여론이 있긴 하지만 내년부터 유료 전환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누구에게 어떻게 입장료를 받을 것인지 방향 설정은 분명히 해야 한다. 유료화 반대 입장의 논리 중 하나는 공공성 축소 우려다. 국립 문화시설이 비용 부담으로 접근권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루브르박물관·바티칸박물관 등 외국의 박물관들은 대체로 유료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프랑스 국립미술관은 문화유산법 등에 의해 18세 미만 청소년과 26세 미만 유럽경제지역(EEA) 거주자에게 무료혜택을 제공한다. 국중박 또한 대학생 등 미래 세대에 무료로 문을 개방한다면 공공성 훼손이라는 반대 진영의 논리를 일부 완화할 수 있다. 교육적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문화유산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 청소년층을 장기적 문화 소비자로 만드는 효율적인 대안이다.

재정 구조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입장료, 상품 판매 등 모든 수입은 국고로 귀속된 뒤 다시 예산으로 배분된다. 현재로선 입장료를 받더라도 자체적으로 시설 개선 등 재투자를 위한 예산으로 활용할 수 없는 셈이다. 관람료를 5000원∼1만원으로 책정할 경우 연간 수익은 약 3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유료화의 정책적 동력이 충분히 확보되기 어렵다. 유료화가 서비스 향상으로 귀결되려면 입장료 수입을 기관이 직접 쓸 수 있도록 특별 회계 등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유료화 논의와 별개로 국중박 운영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제도 뒷받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영박물관 등 영국의 국립박물관은 무료로 운영되지만 자율기부제와 멤버십으로 부족한 운영비를 채운다.

국중박도 연구 목적 등으로 자주 찾는 이들을 위해 멤버십 등 제도를 통해 충성 관람객의 안정적 후원을 유치하며 재정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유료화 성패는 요금 부과 여부가 아니라 공공성과 교육적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관람 환경과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높일 수 있는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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