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대표 프로듀서이자 대중문화교류위원장직을 맡은 가수 박진영(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진영 SNS 문화 산업에서 국경도 국적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언제나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글로벌 협업이 필수인 현재는 더욱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는 국가 간 갈등 때문이다. 우리는 한한령(限韓令)을 겪고 있다. 2016년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발표한 뒤 중국은 공식 발표 없이 한국 콘텐츠를 사실상 전면 제한하며 이른바 한한령을 시행했다. 비공식적으로 콘텐츠 협력과 한국 연예인의 광고와 방송 출연을 금지하면서 교류는 단절됐다. 한한령 해제를 두고 희망고문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일본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중국 정부의 한일령(限日令)이 확산 중이다. 지난달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고조된 중일 갈등은 문화계까지 번졌다. 일본 가수들의 중국 공연이 돌연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일본 관련 콘텐츠와 공연은 모두 백지화됐다.
그룹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글로벌 협업 속에 한일령은 K-팝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걸그룹 르세라핌은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 예정이던 팬사인회가 취소됐다. 주최 측은 모두 ‘불가항력’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중일 갈등 상황의 여파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르세라핌은 멤버 다섯 명 중 둘(사쿠라·카즈하)이 일본 국적이다. 유사 사례는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달 초 그룹 클로즈유어아이즈의 항저우 팬미팅에서는 일본인 멤버 켄신이 행사에 불참했다. 같은 날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가요 기획사 인코드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팬미팅은 당일 새벽 취소됐다. 일본인 마사토와 센이 출연진에 이름을 올린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 그룹 JO1의 광저우 팬미팅도 취소됐다. CJ ENM과 요시모토흥헙이 한일 합작으로 설립한 기획사 소속으로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인 멤버가 포함된 그룹들의 중국 현지 행사는 사실상 전면 중단이다.
일본, 중국 소비자들은 K-팝 팬덤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해당 국가 출신 멤버를 포함한 다국적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자리잡았다. SM엔터테인먼트가 2012년 선보인 그룹 엑소에 중국인 멤버가 다수 포함됐고, 이후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이 동아시아 생활권의 멤버를 포함했다.
이들 국가는 한국에겐 영원히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고 문화권도 상당 부분 맞닿아 있지만 서로에게 민감한 지점들이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 문화적인 견해의 차이는 양국의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으로 인식된다. 서양 문화권과의 갈등도 있다. 올해 걸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가 흑인 문화 코스프레 논란에 휘말리며 문화의 맥락과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힙합·R&B 미학만 차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거에도 종교·민족의 상징이나 전통 등으로 인해 논란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글로벌 합작은 큰 성공의 기회이면서 동시에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단순히 국가 간의 만남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기획·제작·마케팅에 걸쳐 해당 문화권의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