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댄서들과 단독 콘서트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 제이홉. 빅히트 뮤직 제공 대중성 있는 팝 장르와 한국이 만나 전 세계가 향유하는 K-팝이 만들어졌고 이젠 글로벌 합작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경계 없는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 전 세계 52만 관객을 동원한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솔로 월드투어는 수십명의 해외 댄서들이 무대에 올랐다. 제이홉은 킬링 잇 걸(Killin’ It Girl) 컴백을 준비하며 SNS에 올라온 영상을 보고 한명씩 댄서를 모았다. 올 초 발표한 스위트 드림스(Sweet Dreams)는 미국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알앤비 송을 수상한 가수 미구엘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음악을 매개로 하나 돼 결과물을 만드는 시대다.
JYP와 소니뮤직 재팬이 합작한 니지 프로젝트의 시즌1을 통해 탄생한 그룹 니쥬.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찾아가는 인재 발굴 시스템 과거에는 아이돌의 꿈을 가진 이가 직접 한국을 찾아 오디션을 보거나 기획사에서 현지 오디션을 열어 인재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주를 이뤘다. 요즘은 기획사가 직접 현지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협업한다. 단순히 소수의 해외 국적 멤버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현지 연습생을 상대로 데뷔조 찾기에 나선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소니뮤직 재팬과 일본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Nizi Project)를 공동 기획했다. 니지 프로젝트는 당시 JYP의 지향점인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GLOBALIZATION BY LOCALIZATION)’를 위한 출발이었다. 일본 최대 음반사인 소니뮤직과 멤버 선발부터 트레이닝, 기획, 제작, 매니지먼트까지 모든 과정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여기에 일본 지상파를 통해 방송되며 현지의 관심을 입증했다.
JYP와 소니뮤직 재팬이 합작한 니지 프로젝트의 시즌2를 통해 탄생한 그룹 넥스지.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국적 불문 글로벌 오디션을 개최해 도쿄에서 서바이벌 트레이닝을 거쳐 탄생한 팀이 시즌1(2019)의 니쥬다. 니지 프로젝트의 소년 버전인 시즌2(2021)에서는 일본, 미국, 한국 총 11개 도시 예선을 거쳐 도쿄와 서울 합숙까지 통과한 7인이 넥스지 멤버로 최종 발탁됐다. 이달 데뷔 5주년을 맞은 니쥬는 일본 내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발표한 ‘러브 이모션’은 오리콘 주간앨범 랭킹 통산 다섯 번째 1위에 올랐고, 21개 도시에 걸친 투어를 마쳤다. 지난해 5월 데뷔한 넥스지는 한국 활동에 주력하면서도 일본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하이브는 라틴 아메리카까지 시장을 넓혔다. 하반기 미국 스페인어 방송사 텔레문도에서 방영한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파세 아 라 파마(Pase a la Fama)를 통해서다. 해당 방송은 동시간대 스페인어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팬들에게 다가가겠다”는 포부의 우승팀 무사(MUSA)는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의 신규 레이블 시엔토 레코즈와 손잡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그룹 캣츠아이. 하이브X게펜 제공 미국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게펜 레코드와 협업해 발굴한 걸그룹 캣츠아이는 내년 2월 열리는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2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는 등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현지화 그룹 앤팀의 일본 내 입지도 확고하다. 하이브의 ‘멀티 홈, 멀티 장르’ 전략이 현지 음악산업과 만나 시너지를 낸 결과다.
올해 데뷔한 빅히트뮤직의 신인 그룹 코르티스. 빅히트 뮤직 ◆음악·안무·투어·마케팅까지…합작 없인 K-팝도 없다 올 한해 가장 센세이션한 데뷔는 코르티스였다.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후배 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세상에 나왔지만 한층 더 자유롭고 개성있는 콘셉트로 무장했다. 곡 작업을 위해 몇 달씩 LA에 머무르며 현지 스태프들과 곡, 뮤직비디오, 콘텐츠 등을 창작한 이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영 크리에이터크루’의 강점을 굳혔다. 자체 콘텐츠를 통해 공개되는 작업기를 보면 글로벌 협업 과정에 대한 이해가 더 빠르다. 다국적 그룹답게 해외 작업진과의 소통에도 거침이 없다.
K-팝신에서 글로벌 협력은 필수가 됐다. 팝스타들의 피처링을 받고, 유명 프로듀서진과 협업을 거친 음악을 발표한다. 방탄소년단은 제이슨 데룰로, 시아, 할시의 피처링을 받았다. 브루노 마스의 피처링으로 떠들썩한 한 해를 보낸 로제의 아파트도 글로벌 피처링의 좋은 예다.
전 세계 팬덤을 타깃으로 곡을 발표하는 만큼 글로벌 작곡가·프로듀서와의 협업도 잦다. K-팝 초창기에도 해외에서 만든 곡을 선보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SM엔터테인먼트가 2000년대 후반 ‘송 캠프(song camp)’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효율적인 협력 시스템이 갖춰졌다. 송 캠프란 다수의 제작진이 일정 기간 동안 모여 여러 곡의 데모를 생산해 내는 창작 시스템이다. 앨범 발매 주기가 점차 짧아지면서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 양질의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창작진의 소통의 창구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소통의 시작이 SNS의 DM(다이렉트 메시지)이 될 수도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수록곡 소다팝을 만든 빈스는 “DM을 통해 해외 작곡가들에게 협업 제안을 많이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곡 작업을 마치면 현지 마케팅과 공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협업이 펼쳐진다. 하이브, JYP, SM, YG 등 규모가 큰 기획사들은 현지 법인이나 레이블을 만들어 세부 사항을 담당한다. 월드투어는 현지 프로덕션과 공연 기획사, 스폰서십이 결합한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이 미국 LA에서 공연한다면 현지 공연 매표부터 공연 관련 MD 제작 및 판매, 공연 설비와 운영, 관객 관리 등 전 과정에 걸쳐 현지 인력의 협업이 필요하다. 현지에서 새로운 앨범을 내고 활동한다면 음원 유통·방송 담당자도 있어야 한다. 팬덤을 확장하기 위한 현지 마케팅도 필수다. K-팝이라는 장르 속에 세계 각지의 인력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