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이 확산하면서 제작 방식도 국경을 넘고 있다. 제작 무대가 더 이상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채널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동시에 성과까지 챙기면서 제작 지형이 빠르게 확장하는 모습이다. 사진은 넷플릭스 시리즈 ‘로맨틱 어나니머스’ 스틸컷.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가 높아지면서 제작 무대 또한 국경을 넘어 확장 중이다. 국내 업계가 해외 파트너와 손잡고 합작 형태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뿐 아니라 국내 방송사까지 현지 제작사나 채널과 협업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일 합작 연이어 흥행…성공적 제작 모델로
지난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로맨틱 어나니머스’는 나흘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비영어) 부문 6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단숨에 1위를 기록했고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칠레·콜롬비아 등 총 13개국에서 톱10에 올랐다.
넷플릭스 시리즈 ‘로맨틱 어나니머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일본 오리지널 시리즈지만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한효주가 주인공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한효주는 일본 인기 배우 오구리 ?과 호흡을 맞췄으며 양국의 톱배우 송중기와 사카구치 켄타로까지 깜짝 출연했다.
국내 제작사가 주도한 한일 합작 드라마로 완성된 이 작품은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쓰키카와 쇼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한국의 김지현 작가가 극본을 집필했다. 단순히 일본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수준을 넘어 배우, 제작진 등이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K-드라마의 색채와 일본 정서의 미감이 조화롭게 구현된 이상적인 협업 모델로 평가됐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 포스터. 한일 공동 제작 모델은 최근 들어 더욱 긴밀하고 빈번하다. CJ ENM 산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tvN)를 리메이크한 일본판을 제작해 올해 양국에 선보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등을 연출한 안길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일본 유명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을 쓴 오오시마 사토미가 극본을 맡았다. 웹소설 원작 줄거리를 토대로 현지 정서에 맞게 각색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구글이 공개한 2025년 올해의 검색어 일본 드라마 부문 1위에 올랐다. 세계적 히트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능가할 정도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일본 TBS와 합작한 드라마 ‘첫사랑 도그즈’ 스튜디오드래곤이 일본 TBS와 합작한 드라마 ‘첫사랑 도그즈’는 지난 7월 현지에서 방영됐다.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tvN) 등을 만든 노영섭 감독이 공동 연출로 참여했으며 배우 나인우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재벌 3세 역을 맡아 키요하라 카야, 나리타 료 등과 호흡을 맞췄다.
◆한일 합작에 푹 빠진 글로벌 OTT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울메이트’ 일본 넷플릭스는 ‘로맨틱 어나니머스’에 이어 옥택연과 이소무라 하야토 주연의 오리지널 시리즈 ‘소울메이트’를 한일 협업으로 준비 중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의 자회사 지티스트가 제작을 주도한다. 그룹 2PM 활동과 드라마 ‘빈센조’(tvN) 등으로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은 옥택연이 베를린, 서울, 도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끌 예정이다.
넷플릭스 영화 ‘가스인간’에 각각 극본, 연출에 참여하는 연상호 감독과 가타야마 신조 감독(왼쪽부터). 사진=넷플릭스 일본 SF 고전 영화 ‘가스인간 제1호’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가스인간’도 대규모 한일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영화 ‘부산행’·‘계시록’·‘얼굴’ 등 독보적인 세계관을 자랑하는 연상호 감독과 일본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각각 극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오구리 ?과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드’는 한일 합작 만화 ‘푸른 길’을 원작으로 한다. 한국과 일본의 형사가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공동수사 하는 과정을 그린다. 손석구와 나가야마 에이타가 주연을 맡았다.
'메리 베리 러브' 주연배우 지창욱, 이마다 미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디즈니+는 최초 다국적 작품으로 한일 합작을 택했다. CJ ENM이 일본 지상파 방송사 닛폰 테레비와 공동 제작해 내년 공개하는 ‘메리 베리 러브’는 미지의 일본 섬에서 벌어지는 한국 공간 기획자와 일본 여성 농부의 한일 청춘 로맨스를 그린다. 글로벌 인지도를 갖춘 배우 지창욱과 일본 대세 배우 이마다 미오가 호흡을 맞췄다.
CJ ENM 글로벌콘텐츠제작팀 이상화 CP가 기획, OTT 인기작 ‘시맨틱 에러’ 김수정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드라마 ‘이혼보험’(tvN) 등을 집필한 이재윤 작가가 참여했다. 여기에 일본 현지 제작진까지 모두 합심해 국가와 언어를 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제작 중이다.
◆방송사도 뛰어든 국가 간 공동제작
제작사뿐 아니라 방송사가 직접 해외 채널과 손을 잡고 영상물을 제작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개최한 2025 방송 공동제작 국제 콘퍼런스(IBCC)에서는 올해의 우수 공동제작 작품으로 드라마 ‘오늘은 뭐묵지?’가 대상, 다큐멘터리 ‘전설에 도전하다, 메가왓티의 봄배구’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부산MBC와 일본 TV아이치가 공동 제작한 ‘오늘은 뭐묵지?’ ‘오늘은 뭐묵지?’는 부산MBC와 일본 TV아이치가 공동 제작한 드라마로 그룹 아스트로의 진진과 요시하라 마사토가 주연을 맡아 한일 양국의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먹거리와 일상의 매력을 전했다. KBS와 인도네시아 MOJI 미디어그룹이 제작한 ‘전설에 도전하다, 메가왓티의 봄배구’는 인도네시아 배구선수 메가왓티의 도전기를 통해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비 상승 속 중요성 커진 글로벌 합작
OTT 부상과 제작비 상승 등 제작 환경이 급변한 국내 콘텐츠 업계의 글로벌 합작 사례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방미통위는 “최근 제작비 상승과 소재 고갈 등으로 방송사나 제작사가 단독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제작사 입장에서는 방송사 및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비 부담을 분산시키고 현지 시장 내 유통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다.
박준서 SLL 제작부문대표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제작한 콘텐츠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나는 것은 아시아 콘텐츠의 경쟁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한일 양국의 장기적인 협업이 가능한 기반을 만들어 새로운 지적재산(IP) 발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CJ ENM 측은 “K-드라마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서 제작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현지에 있는 제작사, 플랫폼 등 파트너사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개발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