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보건의료 체계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11일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이미 데이터 기반 의료 혁신을 국가 전략으로 설정했다. 이를 토대로 ▲정밀의료 ▲인공지능(AI) 진단 ▲바이오 신약 개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데이터 활용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이로써 ▲진료기록 ▲유전체 정보 ▲생활·환경 정보 ▲임상시험 데이터가 서로 연계되는 체계가 구축됐다. 이제 의료·산업·연구 영역에서의 데이터 활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보건의료데이터 표준화·연계 인프라가 확대되면서 진료·유전체·역학·임상자료를 통합 분석하는 국가 단위 데이터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빅데이터 플랫폼·의료데이터 중심병원·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사업을 통해 정밀의료·연구·산업 혁신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염민섭 한국보건의료정보원장(가운데)이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참여자관리시스템 구축 사업 착수보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 제공 국내에서도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고령화 심화와 만성질환 증가, 의료비 지출 상승, 의료 인력 부족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의료 제공 방식을 넘어 데이터 기반의 효율적 관리·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이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임상·바이오데이터를 확보하고 공유·활용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에 대한 기대도 고조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보건의료데이터 정보화 중추 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해 왔다.
데이터 표준화와 상호운용성 강화, 안전한 데이터 활용·연구지원 체계 마련 등 토대를 구축했다. ▲보건의료빅데이터 플랫폼 ▲K-큐어(K-CURE) 네트워크 구축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구축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데이터 활용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연계·결합이 만드는 새로운 데이터의 가치
그동안 보건의료 데이터는 기관별 목적에 따라 구축·보관돼 상호 연계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공단의 진료·건강검진 자료, 심사평가원의 명세서 정보, 질병관리청의 역학·감염병 데이터, 암센터의 암 임상 정보,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 사망원인 등 모두 데이터는 확보됐지만 이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들어 이같은 데이터들은 서로 결합할 때 더 큰 가치를 갖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이 고안됐다.
의정원이 운영하는 이 플랫폼에는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질병관리청 ▲국립암센터 ▲국립중앙의료원 ▲일산병원 ▲국립재활원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국가데이터처 ▲병무청 등 10개 기관에서 72종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에서는 방대한 의료·건강·역학 데이터를 가명처리 후 개인 단위로 안전하게 결합해 연구자에게 개방한다. 이 사업은 공공주도의 최초 이종 데이터 결합 체계를 마련하며 의료R&D와 정책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암 생존율 분석 ▲예방접종 효과 평가 ▲만성질환 위험요인 예측 ▲의료취약계층 정책 연구 등은 플랫폼의 개인 단위 결합 데이터가 있어 가능했던 연구들이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 안심활용센터 내부 모습. ◆의료데이터 중심병원, 국가 단위 임상데이터 허브로 성장 의정원은 의료데이터 중심병원 지원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국내 병원들이 보유한 방대한 임상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연구·산업·공공 목적에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대표 사업이다.
의정원은 병원 간 데이터 구조를 통일하고 질 높은 데이터셋을 만들기 위한 기술·정책 지원을 제공해 왔다. 이 사업을 통해 축적된 고품질 임상데이터는 의료 AI 학습, 신약·의료기기 개발, 질병 예측 모델 고도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개최된 ‘의료데이터 중심병원 성과교류회’에서는 각 병원의 데이터 표준화 성과와 연구 활용 사례가 공유되며 의료기관 간 협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K-CURE 임상 네트워크’는 의료데이터 중심병원이 쌓아온 임상데이터를 기반으로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연계해 공공 라이브러리 형태의 암 임상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개방한다.
개방된 데이터는 의정원이 지정·운영하는 안심활용센터에서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안심활용센터는 민감한 데이터를 외부로 반출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보안 분석 전용 공간이다. 현재 전국 5대 권역에서 7개의 센터가 운영 중이다. 내년에는 2개 센터가 추가될 예정이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미래 바이오헬스 연구의 핵심 인프라
국가 차원의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필수다. 미국은 ‘올 오브 어스(All of Us)’ 프로젝트를 통해 100만 명 규모의 유전체·임상데이터를 확보했다. 영국도 ‘UK 바이오뱅크(UK Biobank)’를 중심으로 50만 명 이상의 참여자 데이터를 갖추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국내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사업은 유전체·임상·환경·생활 습관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의정원은 이 사업에서 참여자관리시스템과 데이터뱅크의 구축 운영 등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를 통해 데이터 수집·품질관리·표준화·보안관리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의정원 측에 따르면 유전체 데이터와 임상데이터는 서로 다른 기관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이를 결합·정제하는 기술은 데이터의 신뢰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 관계자는 “데이터의 완전성, 일관성,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검증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이 본격화되면 국내에서도 대규모 유전체 기반 연구와 정밀의학 실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희귀질환 유전자 변이 분석, 암 관련 생체표지자 발굴, 맞춤형 치료 전략 개발 등이 대표적인 연구 분야로 꼽힌다. 향후 바이오벤처와 제약기업 역시 새로운 약물 반응 예측 모델을 개발하거나 임상시험 설계를 고도화하는 데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진다.
정집민 한국보건의료정보원 데이터활용지원사업단장이 데이터중심병원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데이터 활용 확대, 의료·산업·연구 분야에 전방위적 효과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확대가 가져올 변화는 의료·산업·연구·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대되고 있다.
의정원에 따르면 먼저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의 진단 정확도가 높아지고 치료 효과가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별 유전·환경·생활습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만성질환 관리 효율도 높아질 전망이다. 이는 국민 건강 수준 향상과 의료비 절감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연구 분야에서는 대규모·고품질 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정밀한 연구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연구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 질환 예측 모델, 유전체 기반 신약 개발 등 첨단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산업 측면에서도 의료기기·바이오헬스·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혁신 제품 개발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 기반 검증체계가 마련되면 기업은 제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보다 신속하게 입증할 수 있고,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도 높아진다.
염민섭 한국보건의료정보원 원장은 “의정원이 추진하는 여러 사업들은 단편적 데이터 관리가 아닌, 국가 차원 데이터 생태계 정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표준화·연계·보안·활용지원 등 데이터 전 주기를 포괄하는 정책 추진은 보건의료 데이터 기반의 의료혁신을 앞당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데이터 기반 의료 혁신은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국가 의료 경쟁력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철저한 정보보안을 바탕으로 데이터 품질 기준 고도화, 참여 대상 확대, 데이터 결합 프로세스 효율화 등을 통해 국가 보건의료 데이터 허브 기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