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재판한 판사” 故 한기택 부장판사 유품 법원도서관에 기증

글자 크기
“목숨 걸고 재판한 판사” 故 한기택 부장판사 유품 법원도서관에 기증
1988년 2차 사법파동 성명서 원본도 기증
고(故) 한기택(1959∼2005) 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3기)의 가족이 27일 고인의 유품을 법원도서관(관장 전지원)에 법원사 자료로 기증했다. 고인의 마지막 배석판사였던 황진구 서울고법 부장판사(연수원 24기)가 보관하던 고인의 인장(印章), 2차 사법파동 당시 고인을 비롯해 소장판사들이 작성한 성명서 초안 원본도 함께 기증돼 의미를 더했다.
사진=법원도서관 제공 이날 경기 일산 법원도서관에서 열린 기증식에는 고인의 모친과 자녀들, 김종훈 변호사(13기·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참석해 고인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 한기택 부장판사는 19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6년 판사로 임관한 이후 서울민사지법, 서울고법, 수원지법, 서울행정법원, 대전고법 등에서 재직했다. 동료 법관들은 그를 두고 “목숨 걸고 재판한 판사였다”며 강직한 성품과 치열한 성찰로 법관이 갖춰야 할 자세를 몸소 보여준 인물로 기억한다. 고인은 사회 소수자들의 차별 해소와 권익 보호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인권을 강조한 판결을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인은 1988년 제2차 사법파동 당시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서 초안 작성에 앞장섰다. 당시 동료 법관이었던 이광범 법무법인 LKB평산 경영총괄대표(13기),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13기), 이홍철 변호사(13기) 등도 성명서 작성에 함께했다.

이번에 기증된 유품에는 고인의 유년기부터 재직 시절까지의 생애를 보여주는 사진과 기록, 재판 업무에 사용한 자료, 고인의 일상과 고민이 담긴 다양한 소지품이 포함돼 있다. 이홍철 전 판사가 보관하고 있던 2차 사법파동 성명서 원본도 함께 기증됐다. 이광범 LKB평산 대표변호사는 “(성명서) 필체를 유심히 보면 당시의 긴장감과 떨림을 느낄 수 있다”며 “당시 밤새워 성명서를 작성한 세 명이 먼저 이름을 올리기로 하고 특히 한기택 판사가 맨 먼저 총대를 메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2차 사법파동 성명서 원본. 이광범 법무법인 LKB평산 경영총괄대표 페이스북 고인의 아들 한동균씨는 “선친께서 생전에 보여주신 삶의 태도와 신념이 후배 법관들과 법원 구성원들에게 전해지고 귀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며 “2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선친의 유품들이 법원에 잘 보존되어 앞으로 대한민국 사법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고 기증소감을 밝혔다.

황진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고인은 사건 하나하나를 처리할 때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고 사건 당사자들을 따뜻하게 바라본 훌륭한 법관이었다”며 “지금의 법관들도 이러한 고인의 태도를 되새긴다면 사법부의 신뢰도 금세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훈 변호사는 “고인을 1978년 대학교 후배로 처음 만나 2005년까지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 고인은 주변에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그야말로 우리에게 빛이 되는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전지원 법원도서관장은 “한기택 부장판사님은 법관의 소명을 삶 전체로 실천하신 분이고, 기증된 유품 하나하나에 고인의 치열했던 삶과 그의 철학이 온전히 담겨 있다”며 “기증을 결심해 주신 가족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홍윤지 기자 hyj@segye.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