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 방영 이후 생활체육으로 축구를 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었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동호인 축구 부문 성인 여성의 증가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골때녀의 첫 방영이 2021년 6월이었으니 2020년 지표와 2025년 지표를 확인해도 그 증가폭은 확연하게 눈에 띈다. 2020년에 2495에서 2025년 3855명으로 54.5%나 늘었다. 접근성이 용이한 풋살(미니축구)은 성장세가 더 가파르다. 2020년 182명에서 2025년 571명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인원들이 꽤 많음을 감안하면 수치는 더욱 늘어난다.
민소영씨(앞줄 왼쪽 첫 번째)가 FC호들 팀원들과 함께 지난 5월 시흥 HM풋살파크에서 열린 제7회 언니들 축구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소영씨 제공 서울 동작구에 사는 회사원 민소영(40)씨도 골때녀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축구 본능을 일깨웠다. 지난해 1월 아들 지오를 낳은 민씨는 “골때녀를 보며 풋살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지는 2~3년이 됐는데, 임신과 출산으로 관심을 끊어야 했죠. 한참 육아를 하던 와중에 2023~2024년생 엄마들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동작구에서 운영하는 여성풋살수업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거다’ 싶어 신청했어요. 지난해 9월부터 ‘풋린이’(풋살+어린이)의 삶이 시작됐죠”라면서 “막상 가보니 그 단체방에서 신청한 사람은 저 하나였지만,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과 ‘FC호들’(호랑이+노들)이라는 팀을 만들어서 평일에는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경기를 하면서 풋살을 즐기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계주 주자로 뽑힐 정도로 달리는 걸 좋아했던 민씨지만, 중고교에 자연스럽게 운동할 기회가 줄었던 게 아쉬웠다. 그는 “중고교 때 운동장을 축구하는 남자 애들이 다 쓰는 걸 구경만 하는 게 싫어서 여자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 보려고도 했는데, 흐지부지됐던 적이 있어요. ‘나도 운동장을 다 써보고 싶다’라던 그때의 아쉬움을 40대가 된 이제 풀고 있는 셈이죠”라면서 “20~30대에 풋살을 하라고 하면 더 못 했을 것 같아요. 지오를 낳고 몸을 회복하려고 일부러라도 매일 30분씩 헬스를 했거든요. 그 덕분에 기초 체력이 좋아져서 그런지 풋살할 때 더 잘 달릴 수 있게 됐어요”라며 웃었다.
몸을 부딪히는 종목 특성상 발목 인대나 발가락을 다쳐 병원 신세를 진적도 있지만, 풋살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민씨다. 풋살의 매력에 대해 묻자 “팀 스포츠를 처음 해보는 데, 취미로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게 너무 즐거워요. 우리 팀에서 1985년생인 제가 최고참이고 2001년생까지 다양한 나이대가 있어요. 그들과 축구로 친구가 되어 이젠 누구보다 제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사람들이 됐죠. 거기에 삶에 활력이 생기는 느낌도 있고. 무엇보다 풋살을 하는 시간만큼은 ‘엄마 민소영’이 아닌 그냥 ‘인간 민소영’이 되어 육아 스트레스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게 커요”라고 답했다. 골때녀를 지금도 즐겨본다는 민씨의 롤모델은 ‘발라드림’의 서기다. 민씨는 “개인기와 드리블, 패스가 뛰어난 서기를 보며 ‘저렇게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골을 넣을 때보다는 패스가 동료에게 정확하게 갔을 때 더 기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축구 스타일은 ‘국대패밀리’의 육상선수 김민지에요. 그라운드 위를 마구 달리는 것에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 있거든요”라고 웃었다.
서울 이랜드FC의 홍보팀에 재직 중인 김예현(36?왼쪽) 매니저가 풋살 경기에서 자신감 있게 수비하는 모습. 김예현씨 제공
지난 9월 2025 K리그 퀸컵에 참가한 김예현 서울 이랜드FC 매니저(앞줄 오른쪽 첫 번째)와 선수단. 김예현씨 제공 서울 이랜드FC의 홍보팀에 재직 중인 김예현(36) 매니저도 지난해부터 풋살을 즐기고 있다. 입문 계기를 묻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1년 반 정도 축구 선수를 했던 적이 있어요.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깨닫고 그만뒀었죠. 그러다 축구팀에 입사하게 됐고, 저희 팀에서 여성 풋살 아카데미반을 운영하고 있어서 퇴근 후 수강하게 되면서 25년 만에 다시 축구를 하게 됐어요”라고 답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연맹(KLPGA), 대한테니스협회에서도 근무하며 골프와 테니스를 배웠던 김씨는 팀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테니스는 개인 스포츠라 단체로 소통하고 그런 게 별로 없는데, 풋살을 해보니 부상 선수가 나오면 서로 챙겨주고, 대회 준비를 서로 발 맞추며 하다 보니 소속감도 커지고 서로 의지도 되요.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게 되면 어딘가 소속되기 쉽지 않은데, 풋살을 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친해지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소속감을 느끼고 삶의 에너지도 풍성해지는 느낌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풋살을 잘 하고 싶어서 헬스도 열심히 해요. 그러다 보니 체력도 더 좋아지고. ‘도저히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축구를 할 때마다 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민씨와 김씨에게 풋살을 즐기는 동호인으로서 목표를 묻자 놀랍게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60대, 70대에도 공 차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이제 축구는 내 삶의 일부가 됐어요”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