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S그룹에서는 일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권장 휴일에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출근해 일본의 역사와 산업 구조를 분석하고 한일 기업 간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는 내부 세미나를 열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하고,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둘러싼 공급망 재편이 가속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같은 진영 내에서 역할을 나눠야 하는 현실적 이유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긴장 속에 한국이 미국 중심의 기술 동맹에 참여하고, 일본이 핵심 장비와 소재를 공급하는 구조가 정착되면서 양국은 경쟁보다 협력이 불가피한 관계로 재편되고 있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 사업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 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고 말했다.
기업이 일본 배우기에 빠졌다. 이 같은 흐름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 선제적으로 눈을 돌린 인물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그는 재계 인사들 가운데서도 가장 꾸준히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최 회장은 오는 12일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서 열리는 '도쿄포럼 2025'에 참석해 그 흐름을 직접 이어간다. 그는 개회사를 통해 불평등과 기술 전환 등 자본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짚고, 한국과 일본의 '연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할 예정이다.
그는 앞서 "한일이 유럽연합(EU)처럼 공동의 시장과 협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AI·반도체 등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일본과의 연대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번 포럼에는 후지이 데루오 도쿄대 총장, 이와이 무쓰오 일본 기업경영자협회 수석부회장 등 일본 주요 인사들이 함께하며, 좌장은 박철희 일본 국제교류회 특별 고문(전 주일대사)이 맡는다.
최근 들어 다른 주요 기업들도 일본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삼성전자다. 임직원 사이에서 일본 시장과 기술, 언어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며, 회사도 이에 맞춰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내 교육 프로그램인 '삼성 에듀'를 통해 일본어를 포함한 외국어 과정을 강화했고, 지난 6월부터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임직원을 대상으로 일본어(SJPT) 등 7개 외국어 회화시험 응시료를 연 2회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년 전에는 일본을 따라가기 위해 일본을 공부했다면, 지금은 기술 수준이 거의 비슷해진 상황에서 지정학적 위기를 함께 돌파하기 위한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일본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엔 일본 도쿄에서 서밋 행사를 열어 현지 협력사들과 지속가능한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을 논의하고 관계를 두텁게 쌓았다. 지난달엔 일본 소프트뱅크와 6세대 이동통신(6G), AI 기반 네트워크 기술 등 차세대 통신 기술을 함께 연구하기 위한 협약을 맺는 굵직한 협력도 성사됐다.
신각수 니어재단 부이사장(전 주일대사)는 "한일 간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 분야를 위주로 한 협력이 차츰 강화되는 분위기"라고 짚으며 "앞으론 인공지능(AI)과 관련해, 한일 모두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한 데이터센터 등 분야에서 협력 매커니즘을 만들어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공통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일 플랫폼을 만들고 기업들이 그 안에서 협력하는 풍경도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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