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 배구에서 미들 블로커 포지션은 전위 세 자리만 소화하고 후위에서는 리베로와 교체된다. 이런 이유로 전후위 가리지 않고 여섯 자리를 모두 소화하는 아포짓 스파이커나 아웃사이드 히터같은 날개 공격수들에 비해 많은 득점을 올리기 힘들다. 아울러 공격 루트도 리시브가 잘 됐을 때만 활용 가능한 속공이나 이동 공격 정도로 제한되는 것도 다득점에 불리한 구조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의 ‘블로퀸’ 양효진(36·현대건설)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아니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양효진이 2005년 출범한 V리그에서 남녀 통틀어 최초로 8000득점 돌파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개인 통산 7992점을 기록 중이던 양효진은 지난 8일 김천 도로공사 원정에서 2세트에 8점째를 채우며 8000득점 고지를 돌파했다. 여자부 개인 통산 득점 2위인 박정아(페퍼저축은행·6281점)보다 2000점 가량 많은 수치다. 남자부 역대 1위인 레오(현대캐피탈·6762점)보다도 1300점 가량 많다. 박정아와 레오는 아웃사이드 히터다. 미들 블로커인 양효진이 동 포지션의 다른 선수들과는 비교불가한 득점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양효진은 15점을 뽑아내며 통산 득점 기록은 ‘8007’로 늘렸다. 5세트 9-8에서는 빈 곳을 노린 연타 공격을 통해 남녀 통틀어 역대 1호로 공격득점 6000점을 넘어섰다. 양효진이 다른 미들 블로커들과 달리 공격에서도 날개 공격수들에 뒤지지 않는 생산력을 보일 수 있는 원동력은 속공이나 이동 공격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공격 루트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스텝이 빠르지 않은 편이라 이동 공격은 거의 구사하지 않는 양효진은 개인 시간차성의 오픈 공격을 구사한다. 양효진과 함께 뛰는 세터들은 리시브가 흔들려 올라와도 코트 가운데에 공을 높게 올려놓으면 1m90의 큰 신장을 앞세운 양효진은 천부적인 센스와 상대 수비를 빠르게 읽는 시야를 통해 상대 수비 빈 곳으로 이를 찔러넣는다. 이른바 ‘중뻥’이라 불리는 이 공격을 통해 양효진은 리시브의 질에 상관없이 전위 세 자리만 소화하면서도 공격에서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이제 V리그 여자부 미들 블로커들이라면 양효진의 ‘중뻥’을 모두 갖출 정도로 필수 공격루트로 자리 잡았다.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을 지도하다 여자 프로배구 도로공사 사령탑을 맡은 김종민 감독도 “여자부로 처음 왔을 땐 ‘저런 공격을 왜 못 막지?’ 싶었는데, 양효진을 직접 상대해보니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양효진이 공격만 치중한 것도 아니다. 미들 블로커의 제1의 임무인 블로킹도 역대 최고 수준의 기량을 자랑한다. 이날 4개의 블로킹을 더 해내며 블로킹 1650개도 돌파했다. 이 부문 2위인 정대영(은퇴·1228개)과도 400개가 넘는 역대 1위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양효진이다. 도로공사전을 통해 양효진은 통산 8007득점, 6000공격득점, 블로킹 1651개로 늘렸다. 2007~2008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지명된 양효진은 19시즌째 현대건설에서만 뛰고 있는 ‘원 클럽맨’이다. 2024~2025시즌을 마치고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자육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양효진은 연봉 5억원, 옵션 3억원 등 총액 8억원에 현대건설과 1년 계약을 맺으며 잔류했다. 1년 계약은 올 시즌을 마치면 은퇴할 가능성도 열어놨다는 얘기다. 어쩌면 배구 인생의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양효진이 자신의 개인 기록을 어디까지 늘려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