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일몰을 앞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4년 연장을 앞두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한 영업규제가 담긴 유통법 일몰 연장을 위한 개정안은 지난 9월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영업규제는 2029년까지 이어진다.
2000년대 초 급성장했던 대형마트와 SSM은 '전통시장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당시 정치권은 대기업 횡포로부터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와 SSM을 대상으로 심야 영업 제한, 월 2회 공휴일 의무휴업 등 규제가 담긴 유통법 개정을 추진해 2013년부터 시행했다. 대형마트와 SSM에 제약을 걸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유통 패러다임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환되면서다. 올해 상반기 온라인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10%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반면, 오프라인 매출은 0.1% 감소하며 역성장했다. 유통시장 경쟁 구도가 '대기업(대형마트·SSM) vs 중소상공인(전통시장·동네슈퍼)'에서 '온라인 vs 오프라인'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 사이 동네 슈퍼들은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SSM 가맹점으로 전환했다. 유통법 개정 당시만 해도 대다수 SSM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직영점이었지만, 지난해 기준 SSM의 절반가량(47%)은 중소상공인이 운영하는 가맹점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법은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현행 유통법은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SSM 가맹점에도 동일하게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소상공인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통법이 되려 소상공인을 규제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탓에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편의점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하지만 SSM 가맹점은 제외됐다. 똑같은 가맹점인데도 편의점은 가맹사업법 보호를 받는 반면, SSM은 유통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SSM은 전통시장의 성장을 막는다는 통념과 달리, 오히려 지역 오프라인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춘한 경기대학교 교수가 최근 국회 세미나에서 발표한 신용카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SSM 출점 후 반경 1㎞ 내 대형마트 매출은 감소했지만 음식점과 편의점 매출은 증가했다. SSM에서 장을 보기 위해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골목상권에 집객 효과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다.
10여년 전 낡은 잣대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내수 부진 속에서 온라인 시장 공습까지 직면한 골목상권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회는 해당 법안이 소상공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면밀히 따져 유통법 개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십자말풀이 풀고, 시사경제 마스터 도전! ▶ 속보·시세 한눈에, 실시간 투자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