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의 판매자 대금 미정산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정산주기를 단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가운데 이 같은 움직임이 쿠팡과 컬리 등 제조사 상품을 직접 사들여 판매하는 직매입형 플랫폼을 위축시키고 이들과 거래하는 중소업체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3일 유병준 서울대 교수와 전성민 가천대 교수, 강형구 한양대 교수로 이뤄진 합동 연구팀의 'e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정산주기 단축 규제의 경제적 영향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행 60일 이내인 유통사의 납품업체에 대한 정산주기가 20일로 단축되면 1년 안에 이들 플랫폼과 거래를 유지하는 중소 납품업체 비중이 평균 74%로 떨어지고, 운전자본 하위 50% 플랫폼에서는 평균 48%의 업체만 생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쿠팡, SSG닷컴, 컬리 등 국내 주요 직매입형 플랫폼과 네이버, 11번가, G마켓 등 중개형 플랫폼을 대상으로 1년(52주)간 정산주기 60일(9주)과 20일(3주)을 시나리오로 각각 설정하고, 총 100회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시간이 지날수록 납품·입점 소상공인, 유통업체, 소비자 등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 분석했다.
직매입형 플랫폼은 현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회사가 사들인 상품의 대금을 60일 이내 정산하고 있다. 나머지 중개형 플랫폼은 거래 익일에서 8일 등의 정산 체계를 운영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업체 보호 등을 위해 60일로 운영 중인 직매입 거래의 정산주기도 20일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합동 연구팀의 시뮬레이션 결과 정산주기를 단축할 경우 직매입형 플랫폼의 피해가 훨씬 큰 것으로 분석됐다. 직매입형 플랫폼의 주간 거래액은 1년간 13.9% 감소했고, 거래 피해액도 연간 7조7000억원으로 중개형 플랫폼(5조8000억원)보다 높았다. 정산주기를 20일로 단축했을 때 입점업체들의 1년 생존율도 직매입형(68.9%)이 중개형 플랫폼(79.1%)보다 낮았다.
연구진은 "정산주기 단축에 따른 비용 압박이 증가하면 직매입형 플랫폼 기업은 재고비용을 줄이기 위해 취급하는 상품 수와 종류를 소량만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품목이 다양하고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는 대기업보다 자원이 한정된 소상공인 상품의 발주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입점·납품 업체 상당수가 거래 파트너에서 이탈하면서 관련 시장에서 대형업체와 소상공인 간 생산량 등의 격차가 1년 안에 2.4배 벌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됐다. 이에 따른 중소업체의 피해액은 연간 최대 21조원으로 추산됐고, 소비자 선택과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인한 사회적 후생 손실도 19조원 규모로 파악됐다.

앞서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7월 티메프의 판매자 대금 미정산 사태와 올해 초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신청 이후 플랫폼 입점사와 납품업체의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온·오프라인 유통업자의 대금 정산 기간을 단축하는 내용의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대표적으로 22대 국회에서는 윤영석, 임미애, 강민국, 오세희, 김남근 의원 등이 대규모유통업자와 온라인중개거래 플랫폼 등을 대상으로 판매 마감일로부터 10~20일, 직매입의 경우 상품 수령일로부터 30~40일 이내 대금을 정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티메프 미정산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10월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식품산업협회 등도 지난달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과 간담회에서 안정적인 거래를 위해 대금 지급 기한을 20일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본부장은 22일 한국벤처창업학회 주최로 열린 '정산주기 단축 규제의 경제적 영향' 토론회에서 "중소업체들은 판매된 상품에 대해 20~30일 내 정산해주는 중개거래보다 판매 여부와 상관없이 납품한 모든 상품에 대해 정산해주는 직매입 형태를 선호한다"며 "직매입 정산주기가 단축되면 유통업자들이 매입량을 줄여 중소 납품업체의 납품량 감소, 재고 부담 증가 등의 피해가 연쇄적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유통법학회와 한국유통학회 주최로 지난 8월 열린 세미나에서도 전문가들은 "정산 기간을 획일적으로 단축하면 유통 매장에서 상품을 납품하는 회사가 자금 회전과 재고 부담 문제로 인지도가 낮은 중소기업 제품보다 대기업 제품을 선호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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