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벤처캐피털(VC) 업계의 과제는 무엇일까. 최근 서울 강남 디캠프에서 만난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VC와 스타트업 창업자 간 '파트너십 확대'를 우선으로 꼽으며, 미국 실리콘밸리식 투자 철학을 국내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는 VC와 창업자가 동반자로서 협력하지만, 한국에선 투자를 받은 창업자가 '을'이 되는 구조"라며 "VC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스타트업의 방향성과 성장 전략을 함께 설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사와 스타트업 간 협력 문화 부족…투자 금융 본질, 수평적 계약 구조 살려야"박 대표는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삼성물산에서 세일즈 엔지니어로 첨단 해외 기술 소싱과 국내 사업화를 맡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과정에서 투자 금융에 눈을 뜬 그는 2000년 VC 업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한국 최초의 벤처투자사인 KTB와 KT·CJ 등 대기업 벤처투자팀을 거쳐 2015년 트랜스링크인베를 설립했다.
지난 25년간 그는 반도체, 휴대폰 부품 등 IT 하드웨어,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인공지능(AI) 등 첨단 혁신 분야의 한국·미국·중국 기업에 투자했다. 시리즈A 전문 투자라는 원칙을 지키며 설립 이후 10년간 약 2000억원의 운용자산(AUM)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한 점은 벤처투자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였다. 그는 "2000년대 초 국내 VC는 은행 대출처럼 벤처투자를 이해하고, 재무제표 중심의 투자를 진행했다"며 "당시 해외 파견을 나가 보니, 70여년의 벤처투자 역사를 갖춘 실리콘밸리에선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기반한 투자가 활발했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 역시 실리콘밸리 자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글로벌 대형 기업을 탄생시켰다"며 "중국은 나스닥에 약 200개 기업이 상장됐지만, 한국은 단 한곳에 그친다. 시장 규모가 아닌 투자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의 차이였다"고 짚었다.
VC 업계의 핵심 과제로는 '파트너십'을 꼽았다. 그는 "실리콘밸리와 한국에 기술과 사람의 격차는 없었다. 문제는 투자 금융과 계약 구조, 그리고 협력 문화였다"며 "특히 한국에선 창업자가 '이해관계인'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이며, 이 때문에 VC와 신뢰 중심 협력이 어려워졌다"고 강조했다.
컬리·해빗팩토리 등 초기투자 이후 '신뢰 기반' 후속투자 지속신선식품 배송 플랫폼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파트너십 기반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트랜스링크인베는 2016년 시리즈A 단계에서 투자를 시작해 4회에 걸쳐 총 135억원을 투자했다.
박 대표는 "초기 투자 이후 컬리 경영진에 '투자계약서를 실리콘밸리 방식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며 "덕분에 기존의 국내 투자 관행과 달리 컬리와 트랜스링크인베는 수평적인 계약 관계를 만들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외국계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최근 중·소형 유통 플랫폼이 잇따라 회생절차를 밟게 된 것은 회사가 나빠서가 아니다. 투자가들이 팔로우(후속) 투자를 안 해줬기 때문"이라며 "컬리는 튼튼한 계약 구조를 만들어 뒀기에 외국계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코로나19 시기를 거치고도 살아남은 이유"라고 했다.
'해빗팩토리'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AI를 활용해 각종 보험상품을 비교하는 비대면 보험상담 애플리케이션(앱) '시그널 플래너'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2019년 서비스 시작 이후 지난해 누적 이용자가 100만명을 넘겼다. 트랜스링크인베는 현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총 120억여원을 투자했다.
박 대표는 "해빗팩토리의 팀워크와 경영진의 학습 능력에 주목해 투자를 결정했다"며 "AI 등 새로운 변화를 학습하고 파운더가 팀워크를 끌어낼 수 있는 게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I 시대, 서비스형 AI로 본격 확장최근 주목하는 투자 분야는 AI를 결합한 서비스 산업이다. 오픈AI를 비롯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거대언어모델(LLM) 개발 전쟁이 올해부터 LLM을 활용한 앱 서비스 전쟁으로 전환됐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레스토랑 종합 솔루션 스타트업 '컨트롤엠'은 공급망관리(SCM), 고객관리, 직원 의사소통, 세무, 마케팅 등을 통합 제공하는 '레스토지니(RestoGenie)를 개발·운영한다. 박 대표는 "K푸드가 해외로 나가려면 맛을 넘어 현지에서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며 "마진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컨트롤엠의 서비스를 통해 기존의 높은 자영업 폐업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AI 기반 앱 개발 플랫폼 '팝업스튜디오'에도 투자했다. 박 대표는 "2007~2008년 앱스토어 출범과 유사한 변화"라며 "스마트폰이 개발되고 애플 iOS, 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 위에서 여러 앱이 유통된 것처럼, 팝업스튜디오에선 서비스 기획자와 개발자가 만나 팝업 레스토랑을 열듯 빠르게 회사를 만들고, 시장 반응을 확인해 본격적인 사업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트랜스링크인베는 연말까지 AI SaaS 펀드를 300억원 규모로 조성한다는 목표다. 박 대표는 "민간 출자 부분은 기업들과 협력할 계획"이라 며 "투자는 돈이나 기술, 사람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우리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인사이트가 필요한 출자자(LP)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투자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며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VC·LP들과 함께 이러한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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