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전기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이를 알려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 지난 달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얘기다. 이날 회의에서는 주로 기후위기 대책과 에너지 정책을 논의했다. 이 대통령의 '전기요금 인상' 발언은 배출권 거래제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 4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에 근거해 이달 내에 4차 계획기간(2026~2030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 정부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환경부는 지난 12일 공청회을 열고 할당 계획의 얼개를 발표했으나 시장의 관심이 쏠린 배출 허용 총량, 시장 안정 예비분 수량, 배출권 유상 할당 비율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4차 배출권 할당계획이 주목을 받는 것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종료 시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NDC에서는 2030년까지 우리나라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NDC는 2030년에 가까이 갈수록 가파른 감축 경로를 제시했다.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이번 4차 계획 기간 내에 배출 허용 총량이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유상 배출권도 늘려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전기요금 인상과 산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발전 업계와 산업계가 4차 할당 계획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中보다 낮은 배출권 가격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란 기업이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시행했다. 정부가 일정량 이상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간 배출권을 유상 혹은 무상으로 할당하고 그 안에서만 배출 활동을 허용한다. 기업이 할당량보다 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여유 배출권을 시장에 팔 수 있고 더 배출했다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그동안 3차에 걸쳐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했으나 실효성이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은 올해 상반기 기준 8000원대 수준으로, 유럽연합(65달러·2024년 3월 기준·이하 동일), 미국 캘리포니아(40달러)는 물론 중국(10달러)보다도 낮았다.
배출권 가격이 낮다보니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유인이 사라졌다. 배출권 거래제 참여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설비나 기술에 투자하기 보다는 값싼 배출권을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원인은 다양하다. 정부는 제도를 연착륙하기 위해 초기에 배출권을 과잉 발급했고 유상 할당 비율도 EU 등 해외에 비해 낮았다. 3기 계획 기간 유상 배출권 비중은 10%였으며 철강·석유화학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은 100% 무상 할당했다. 2024년 기준 EU의 경우 전환(발전) 부문은 100% 유상 할당했으며, 산업 부문의 유상 할당 비율도 70%에 달했다.
배출권 거래제 시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초기에 참여 기업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배출권을 거래하지 않고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정부는 2017년 할당량부터 이월을 제한했다. 기업들은 배출권을 다음 해에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배출권을 추가 구매할 이유가 사라졌고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배출권 가격이 출렁일 때 정부가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했다.
배출 허용량 줄이고 유상할당 확대4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 계획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도입했다. 우선 정부가 참여 기업들에게 할당하는 배출권 허용 총량이 사실상 줄어들었다.
기존에는 배출 허용 총량 이외에 시장 안정화 조치 용도의 예비분을 두었으나 4차 계획 기간에는 시장안정화 용도의 예비분을 배출 허용 총량에 포함시켰다. 그만큼 참여 기업들에게 할당할 배출권이 줄어드는 셈이다.
4차 계획 기간에는 한국형 시장 안정화제도(K-MSR) 제도를 도입한다. 시장 안정화 용도 예비분을 늘려 시장 조절 기능을 강화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다. 배출량이 증가할 경우 유상 할당 배출권을 경매 시장으로 이전하고, 반대로 배출량이 급감할 경우에는 유상 할당 경매 물량을 예비분으로 돌려 가격을 조절하겠다는 의도다. K-MSR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2026년 6월까지 발표할 계획이다.
산업계는 시장 안정화 예비분을 배출권 허용 총량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은 없지만 예비분의 급격한 확대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제4차 할당계획 토론회'에서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제조업의 생산비용이 크게 증가한 가운데 이번 조치로 배출권 비용까지 추가 부담하게 되면 생산 가동 축소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기업 경쟁력을 고려해 예비분을 적정 수준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차 계획기간에서는 참여 기업을 발전과 발전외로 나누어 배출권을 차등 할당한다. 3차에서는 전환, 사업, 폐기물, 수송, 건물, 공공·기타로 나눴었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은 대폭 상향했다. 환경부는 "해외 사례, 명확한 감축수단(재생에너지)을 고려해 발전 무뭉의 유상 할당을 대폭 확대하되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10%(2025년)부터 50%(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상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4차 계획 기간 이후에는 배출 부문의 100% 유상 할당 시행도 추진하고 있다.
발전 외 부문은 현 10%에서 15%로 상향을 추진한다. 다만, 탄소 누출 업종은 전량 무상 배출하기로 했다. 배출 누출 업종이란 탄소를 많이 배출하지만 수출 위주의 사업 비중이 높은 업종으로 배출권을 유상 할당할 경우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가능성이 높은 업종을 말한다. 철강·비철금속·석유화학·시멘트·정유·반도체·디스플레이·제지 등이 있다. 지자체, 학교, 병원, 대중교통도 무상할당 대상이다.
"요금인상 불가피…대비책 마련해야"발전 부문의 유상 할당이 대폭 증가하면서 발전사들의 부담이 확대되고 이는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최근 3년간 70% 이상 전기 요금이 오른 산업계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신동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게 의뢰한 '배출권 거래제의 전기요금 인상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발전 부문에 대한 50% 유상 할당과 배출권 가격 3만원을 가정할 때 제조업 전기 요금은 연간 2조5000억원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12일 공청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이시형 과장은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이 급격히 증가하면 전기요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산업계는 간접 배출, 전기요금 부담에 대한 부담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10년 이상 발전 부문에 100% 유상할당하고 있는 유럽은 산업과 가정 부문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우리도 전기 요금 인상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남동발전 박성제 부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발전 업계의 배출권 부족량은 3800만톤으로 추정된다"며 "전날 배출권 종가인 1만650원을 적용하면 총 4조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박 부장은 "발전 업계의 재무 부담이 커지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여력이 줄어 든다"며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환경 단체에서는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랜1.5의 최창민 변호사는 "전기요금 인상 효과가 실제보다 과장됐다"며 "4차 계획기간부터 발전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100%로 늘리거나 초기 단계부터 50%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4차 계획기간 대상 업체는 774개다. 환경부는 이달 내 정부안을 마련해 설명회를 개최한다. 이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연내 4기 할당 계획을 확정한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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