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블론 세이브로 팀 승리를 날린 마무리를 비판해야할까. 아니면 2군에 다녀온 뒤 1경기만 7회 등판시킨 뒤 바로 마무리로 활용한 감독을 비판해야할까. 아니면 둘 다 비판하는 게 맞는건가. 가을야구 진출을 위해 한 경기, 한 경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디펜딩 챔피언’ KIA가 마무리 정해영이 무너지면서 KT와의 주말 3연전을 루징시리즈(1승2패)로 마무리했다. KIA는 31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5 KBO리그 KT와의 원정 경기에서 6-7로 패했다. 2연패에 빠진 KIA는 시즌 성적이 57승4무61패가 되며 이날 나란히 승리를 거둔 3~5위 SSG(61승4무58패), 롯데(62승6무59패), 삼성(63승2무60패)와의 승차가 3.5경기로 벌어졌다. 야구계 속설로 3경기를 줄이는 데 통상 한 달이 걸린다고 하는데, 3.5경기 차까지 벌어졌음을 감안하면 5위권 도약이 이번 주말 3연전 루징으로 더 멀어진 KIA다.
이날 경기 전 6위, 8위에 위치한 KT와 KIA는 상대를 가을야구 진출권에서 멀어지게 하고, 자신들을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 했다. 그런 상황이 경기 양상에도 그대로 드러나며 양팀 선발인 KIA 양현종과 KT 오원석은 상대 타선을 이겨내지 못했다. KIA가 먼저 1회 2사 3루에서 최형우의 1루 베이스를 맞고 튀는 행운의 2루타로 선취점을 따냈다. KT도 1회가 시작되자마자 안타-볼넷-안타-안타로 양현종을 정신 못차리게 만들며 2점을 따내며 역전해냈다. 양현종이 이날 처음 잡아낸 아웃카운트는 장성우의 희생플라이였다. 1회에만 3점을 따낸 KT는 2회 1사 2,3루에서 허경민의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더 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KIA도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3회 1사 1,2루에서 김선빈의 중전 적시타로 4-2로 따라붙은 뒤 4회엔 선두타자로 나선 오선우가 우측 담장을 넘기는 벼락같은 솔로포를 쳐냈다. 올 시즌 KIA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속에 주전급으로 올라선 오선우의 생애 첫 한 시즌 100번째 안타는 홈런이었다.
양현종이 4.1이닝 4실점, 오원석이 5이닝 3실점으로 물러난 이후엔 양팀 불펜의 분전 속에 소강 상태가 지속됐다. KT 이강철 감독은 오원석에 이어 6회 마운드에 선발자원인 헤이수스까지 올리며 총력전을 개시했다. 올라오자마자 볼넷과 안타로 무사 1,3루에 몰린 헤이수스는 김석환, 한준수, 김태군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팀의 4-3 리드를 지켜냈다.
4-3으로 이어지던 경기에 균열이 난 건 8회. KIA는 최형우의 몸에 맞는 공에 이어 위즈덤 대신 대타로 나선 나성범의 좌익선상 2루타로 무사 2,3루 기회를 잡았다. 급해진 KT 벤치는 프라이머리 셋업맨 손동현을 올려 오선우를 삼진으로 솎아냈고, 1사 2,3루에서 마무리 박영현을 올렸다. ‘5아웃 세이브’를 맡겼지만, 박영현은 김석환에게 동점 희생플라이를 맞고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어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2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규성이 박영현의 몸쪽 코스 슬라이더를 걷어올렸고, 이 타구는 펜스를 직격했다. 이를 잡으려던 KT 우익수 안현민이 착지 과정에서 부상을 입으며 공은 나뒹굴었고, 그 사이 김규성은 쏜살같이 홈으로 내달리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장내 홈런)을 완성하며 6-4로 역전을 이끌었다. 요기 베라가 말했던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격언이 이날에도 이뤄졌다. KIA 이범호 감독은 9회말 마운드에 마무리 정해영을 올렸다. 6월부터 구위 저하로 부진을 거듭하던 정해영은 지난 17일 전격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기약 없는 징벌성의 1군 말소였지만, 가을야구 진출을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KIA로선 정해영을 열흘 뒤인 지난 27일 SSG전에 정해영을 다시 1군에 복귀시켰다. 그날 정해영은 7회에 등판해 컨디션을 점검했다.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포심 패스트볼 구속도 150km를 찍으며 문제없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이범호 감독은 정해영에 대해 1경기 정도만 마무리 상황이 아닐 때 내보내고 곧바로 마무리로 복귀시킨다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그 방침 그대로 정해영은 이날 9회말 마운드에 팀 승리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첫 타자 허경민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낸 정해영은 스티븐슨에게 우전 안타를 내줬다. 8회 수비 도중 부상을 당한 안현민 대신 대수비로 들어왔던 장진혁을 루킹 삼진으로 잡아낼 때까지만 해도 KIA가 승리의 9부 능선을 넘어선 듯 했다.
그러나 정해영은 아직 팀 승리를 지켜낼 정도로 회복된 게 아니었다. 2사 1루에서 황재균에게 뜬금없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스스로 득점권 위기를 자초했다. 이어진 타석엔 이날 3타수 3안타로 타격감이 좋았던 장성우. 2B-2S에서 정해영의 슬라이더가 몸쪽 코스에 잘 들어간 것을 잡아당긴 장성우의 타구는 3유간을 뚫었고, 스티븐슨이 홈으로 내달려 스코어는 5-6. 이어진 2사 1,2루에서 타석엔 앞선 네 타석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난 김상수가 섰다. 그러나 김상수는 풀카운트까지 끈질기게 정해영을 물고늘어졌고, 8구째 슬라이더가 바깥쪽 스트라이크 코스에 들어온 것을 결대로 밀어졌다. 우중간에 떨어진 이 타구를 처리하려던 KIA 중견수 김호령이 균형을 잃었고, 2사 풀카운트였기에 방망이에 공이 맞자마자 주자들은 자동 스타트였다. 장성우의 대주자로 1루에 나갔던 유준규가 발 빠르게 내달려 홈을 밟으며 길었던 승부가 KT의 극적인 끝내기 승리로 결말이 났다. 정해영의 7번째 블론세이브였다. 과연 정해영을 이렇게 빨리 마무리 보직에 복귀시키는 게 맞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정해영을 너무 믿었던 게 이범호 감독의 패착이었다.
KIA로선 이번 주말 3연전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전날엔 올러-문용익의 유리한 선발 매치업에도 불구하고 문용익에게 5이닝 노히트를 당하며 패배했고, 3연전 마지막 날엔 마무리 정해영을 일찍 복귀시켰다가 끝내기 패배라는 비극적 결말까지 맞이해야 했다. 시즌 전 ‘절대 1강’이란 평가가 무색하게 KIA의 현재 위치는 8위. 그것도 5위권과는 3.5경기 차로 벌어져있다. 이대로 KIA는 통합우승 직후 시즌에 가을야구 초대장도 못 받는 신세가 될까. 그 참담한 현실이 점점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