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 중인 제4차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2026~2030)이 산업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무상으로 배정되는 배출권이 줄고 기업이 직접 사야 하는 유상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내용이 주요 골자인데, 전기요금을 더욱 끌어올려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최근 4차 배출권 할당 계획 공청회를 열고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당초 제3차 계획기간(2021~2025) 대비 배출 허용 총량을 22% 줄이는 안을 공개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환경부는 이날 구체적인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산업계의 반발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가 숫자 공개를 자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산업계의 가장 큰 우려는 유상할당 비율이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에 모아진다. 유상할당은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 등이 배출권을 구매하는 제도다. 정부는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현행 10%에서 2030년까지 50%로 대폭 확대하고 산업 부문도 10%에서 15%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경기 과열이나 침체 때 정부가 공급량을 조절하기 위해 마련하는 시장 안정화 예비분도 많이 늘어난다. 3차 기간 때 약 1400만t이던 예비분은 4기에는 1억1300만t으로 8배 이상 확대된다. 이 물량은 산업 부문의 할당량에서 차감해 조성하는 방식이어서 업계 불만이 크다.
산업계는 유상할당이 늘어날 경우 전기료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무상할당이 줄어 부족분을 직접 시장에서 사야 하는 부담이 커지는데, 발전 유상할당이 확대되면 전기요금에도 탄소 비용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은 t당 8000~9000원대 수준이다. 정부는 적정 가격을 4만~6만원 수준으로 보고 유상할당 비중을 늘려 배출권 가격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발전 유상할당 비중이 50%로 확대되고 배출권 가격이 3만원에 이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연간 2조5000억원까지 뛸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철강·석유화학 업종은 직격탄이 예상된다. 두 산업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대표적 다(多)배출 업종으로, 정유·시멘트까지 포함하면 산업 부문 전체 배출의 40% 가까이를 차지한다. 고로(용광로)와 나프타분해설비(NCC) 등 구조적으로 탄소 배출을 피하기 어려운 설비를 가동하는 탓에 실질적인 감축은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할당 축소와 전기료 인상은 기업 생존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공청회 현장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구체적인 총량과 감축률이 빠진 발표가 나오자 '숫자 없는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수치가 나오면 토론회나 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안이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NDC에서는 산업 부문 감축 목표를 11.4%로 제시했지만 이번 4차 할당계획에서는 '발전 외 부문'으로 묶어 30%에 가까운 감축을 요구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준비해온 투자 계획과 로드맵이 하루아침에 무력화됐다는 설명이다.
산업계 불만은 오는 17일 환경부와의 간담회에서 분출될 전망이다. 환경부는 이날 배출 허용 총량의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방침이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