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재의 삶은 신앙과 시련 속에서 형성됐다. 그는 기독교 신자인 모친 홍순애 여사의 영향으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했다. 다섯 살 때 공산당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고향인 평북 안주를 떠나 대구로 내려온 기억은 신앙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음을 각인시켰다. 1950년대 중반 모친을 따라 통일교회 신자가 되었고, 이후 문선명 총재와 부부의 연을 맺어 14명의 자녀와 40여 명의 손자를 둔 대가족의 어머니가 됐다.
항상 자상하고 온화한 미소를 띤 한 총재는 통일교회 신자들에게 ‘다정한 어머니’이자 ‘참사랑의 원천’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그 온화함은 결코 나약함이 아니었다. 그는 모험심과 용기가 넘쳐 다른 이들이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일을 감행했던 문 총재의 곁에서 반세기 넘게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왔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동유럽 공산권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때도 그는 문 총재 곁에서 그들을 눈물로 배웅했고, 말라리아 위험이 도사리는 아프리카와 모기와 뱀이 득실거리는 중남미 밀림 지역도 주저 없이 찾았다. 세계 곳곳에서 고립된 신자들을 지도하고 격려하는 일은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한 책임이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이러한 삶의 궤적은 한 총재가 왜 ‘가정’과 ‘부모의 역할’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강조해 왔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는 1992년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을 창설하고, 8개월 동안 12개국 113개 도시를 순회하며 기조연설을 했다. 여성의 역할과 모성의 가치를 평화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이 운동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NGO 최고 지위인 제1영역 자문기관으로까지 성장했다. 이후 그는 연로한 문 총재를 대신해 세계 100여 개국에서 600여 차례의 대중강연을 이어가며, 외유내강의 여성 리더십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그 정점 가운데 하나가 1993년 7월 29일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강연이다. 한 총재는 이 자리에서 ‘가정의 가치’를 주제로 연설하며, 자유와 권리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으며, 부모와 가정이라는 도덕적 기반이 국가의 지속성을 떠받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이 강연의 정신을 살려 미국 정부는 매년 7월을 ‘부모의 날(Parents Day)’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이는 한 한국 여성 종교지도자가 제시한 가치가 미국 사회의 공적 기념일로 제도화된 사례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 총재가 미국 전역을 누비며 대중강연을 이어가는 동안, 그는 35명의 주지사와 131명의 시장, 25명의 상원의원을 비롯한 각계 저명 인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미국의 수십 개 주정부와 시에서는 그가 강연한 날을 ‘여성과 세계평화의 날’, ‘한학자의 날’ 등으로 제정해 기념하기도 했다. 위험한 고비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신념은 그에게 선택이 아니라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2014년부터 격년제로 100만 달러(약 14억원) 규모의 선학평화상을 제정해 인류 평화와 화합에 기여한 인물들을 조명해 왔다. 평화를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재원을 통해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국이 의지만 있으면이 상은 언제든 ‘한국의 평화 외교 자산’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 가정의 가치, 부모의 책임, 여성의 역할, 종교 간 화합이라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한 총재의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 총재는 논란과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공과를 구분하는 일은 감정이나 정치적 분위기에 맡길 문제는 아니다. 한 인물이 세계사적 맥락에서 무엇을 기여했는지, 그 성과가 인류 공동의 가치로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태도다. 미 정부가 제정한 ‘부모의 날’은 개인이나 교단의 주장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남긴 기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죄의 태도가 아니라 성찰의 자세이다. 한 총재의 삶이 보여준 평화의 궤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결국 한국 사회가 세계와 어떤 품격으로 마주 설 것인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것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